항목 ID | GC050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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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八線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영조 |
[정의]
해방 전후 미국과 소련의 합의에 의해 포천 일대에 나누어진 군사 분계선.
[개설]
미소에 의한 38선의 획정과 미소군의 남북한 진주는 한반도의 산과 평야 농촌과 도시, 통신과 수송망들을 일시에 분할시켜 놓았을 뿐만 아니라 공업화된 북한 지역과 농업이 압도적인 남한 지역을 분리시켰다. 경기도 포천군의 북쪽에서도 영평천을 경계로 38선이 그어짐으로써 그 남쪽은 추동리, 가양리, 양문리 등이 경계 지역이 되었다.
북한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은 본대가 평양에 도착하기 전에 38선 일대에 본격적으로 부대를 파견하여 남한으로 이주하는 북한 지역 주민들이나 귀환하는 동포들을 검문하는 한편, 일체의 남행 열차 운행을 38선 근처에서 정지하게 하였다. 이로써 한반도 남북한 간의 교통이 차단되었다.
미소군이 처음으로 대치했을 당시 38선 부근에는 남북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 10여 개를 중심으로 초소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소군 초소 중에는 38선 이남 지역에 위치한 것도 있었다. 경기도 포천군은 영평천을 경계로 남북한이 분할되었고 그 북쪽에 소군 초소가, 그 남쪽에는 미군 초고가 설치되었다.
분할된 38도선은 미소군의 진주 당시부터 상호 협조가 없으며 곧바로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영평천 북쪽 유정리 일대에 배치된 북한 청년단이나 북한 경비대 병력이 간간히 영평천을 넘어와 추동리, 양문리 일대의 주민들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한반도에 진주한 미소군에 만들어진 경계선은 도계와 군계 등 행적적인 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지도상의 38도선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여 중립 지대를 설정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를 가지고 있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은 38선과 맞물려 있는 영평천을 경계로 남북한이 분할된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6·25 전쟁 시에는 경기도 포천 지역 북방의 운천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 제3사단과 제4사단, 그리고 제105전차 여단 등이 영평천을 넘어 포천 일대를 공격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