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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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蓮日 |
이칭/별칭 | 불무황제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경상북도 영일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금순 |
출생 시기/일시 | 1871년 1월 17일 - 김연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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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김연일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체포, 투옥됨 |
몰년 시기/일시 | 1940년 5월 10일 - 김연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김연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김연일 출생지 - 경상북도 영일군 도구리 478 |
활동지 | 법정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
추모각 | 의열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
성격 | 항일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주도, 법정사 주지 |
[정의]
1918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개설]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은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 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마을 주민 등 700여명의 시위대는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제주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곤봉과 화승총 등으로 무장하여, 도순리 법정사에서 출발하여 중문리까지 진출하였다. 시위대는 전선과 전신주를 잘라 통신을 끊고, 경찰관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일본인을 집단 구타하는 등 일제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였다.
김연일(金蓮日)은 법정사의 주지로 법정사 항일운동을 총지휘하였다.
[가계]
김연일(金蓮日)은 1871년 1월 17일 경상북도 영일군 도구리 478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김대근(金大根), 어머니는 안일화(安一化)이고, 아들 김정수가 있다
[활동 사항]
김연일은 경주의 기림사에서 승려로 지내다 스승 박만하로 이어지는 제자들과의 인연으로 방동화·정구용 등과 함께 제주도 법정사에 들어와 활동하게 되었다. 김연일은 1914년경부터 법정사에 거주하면서 법정사 활동을 통해 신도들에게 항일 의식을 심어주고, 강창규·방동화 등의 법정사 승려들과 함께 항일운동을 사전에 준비하였다. 김연일은 자신을 불무황제로 하여 좌대장·우대장·선봉대장·중군대장·후군대장 등을 두는 조직을 구성하고, 거사 6개월여 전부터 곤봉·깃발·격문·화승총 등을 준비하여 1918년 무력 항일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8년 10월 5일과 6일의 법정사 정기 예불을 통하여 거사 목적을 밝히고 신도들과 주민들을 설득하여 거사에 참여하도록 하였고, 10월 7일의 출정식에서 김연일은 ‘제주도 내에서 일본 관리들을 쫓아내 원래의 한국시대로 회복하려 한다’는 거사의 목적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김연일은 거사 당일 법정사에 머물러 있었고 체포되지 않은 채 궐석으로 판결을 받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1년 6개월여의 도피 끝에 체포되었고, 최종형량은 감형 등으로 징역 4년 1월로 조정되었으며, 가출옥 등으로 실제 복역한 기간은 3년 2월로 목포감옥 제주지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경상북도 영일군 입암리에 관음사를 창건하여 승려 생활을 하였고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영일군 도구리에 매장하였다가 후일 유족들이 산골하여 절에 위패를 모시었다.
[상훈과 추모]
김연일은 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 참여에 대한 공훈으로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에 있는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 발상지(戊午法井寺抗日運動發祥址)에 건립된 의열사에 영정이 모셔져 독립운동의 뜻이 기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