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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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公轍墓-墓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64-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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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 단독분 |
건립시기/연도 | 1840년 |
관련인물 | 남공철|남유용 |
높이 | 1.4m |
지름 | 16.5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64-2 |
소유자 | 의령남씨 충경공 종회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남공철의 묘 및 묘갈.
[개설]
남공철[1760~184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이며, 자는 원평(元平), 호는 금릉(金陵), 사영(思潁)이다. 아버지는 문청공(文淸公) 남유용(南有容)이다. 재임 중 『규장전운(奎章全韻)』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정조치세에 나온 인재라는 평을 받았다. 순조 즉위 후 『정종실록』 편찬에 참가하였으며, 수차 이조판서를 제수 받고,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1817년에 우의정에 임명된 후 1833년에 영의정으로 치사하여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위치]
남공철의 묘는 금토동 능안골 청계산 자락에 남향하여 위아래로 위치해 있는 2기의 묘 중 아래의 묘이다.
[형태]
원형의 봉분은 용미와 활개가 없으며, 크기는 높이 1.4m, 둘레 16.5m이다.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돌, 6각 향로석이 있고, 상돌 좌우에는 8각 망주석 등의 석물이 있으나 특이하게 문인석이 없다. 이 중 상돌은 백색 대리석으로 문고리 문양이 4면에 양각된 2개의 고석이 받치고 있으며, 망주석은 좌우 높이 2m 내로 조각이 수려하다.
[금석문]
남공철의 묘갈은 봉분 우측에 동향하여 봉분을 향하고 있다.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팔작지붕의 지붕돌[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건립 연대는 1835년(헌종 15)이다. 비신은 4면에 비문이 있으며, 비문은 자신이 생전에 직접 찬술하고 당나라 안진경 글자로 집자하여 금석학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된다. 상단 4면에 전서(篆書)로 丞相大學士奎章閣學士致仕金陵南公自碣銘 倣李陽氷篆(승상대학사규장각학사치사금릉남공자갈명 방이양빙전)이라 새겨져 있다. 비제는 ‘有明朝鮮國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致仕奉朝賀金陵南公自碣銘(유명조선국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세자사치사봉조하금릉남공자갈명)‘이다. 지붕돌은 서까래의 표현이 사실적이며, 처마 두께는 9㎝이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256㎝로, 비좌 높이 49㎝, 너비 115㎝, 두께 78㎝, 비신 높이 155㎝, 너비 60㎝, 두께 30㎝, 지붕돌 높이 52㎝, 너비 108㎝, 두께 68㎝이다.
[현황]
남공철 묘 및 묘갈은 묘역 위에 자리 잡은 그의 모친 정경부인 안동김씨의 묘와 함께 2002년 12월 성남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66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령남씨 충경공 종회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