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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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南靑年大學 |
이칭/별칭 | 청년대학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33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허창무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었던 청년 문화 단체.
[개설]
성남청년대학은 성남 지역 청년들이 서로 돕고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다양한 문화 예술 동호회를 구성하여 문화 강좌와 성남청년문화제, 동아리 활동을 하던 청년 문화 예술 단체다.
[설립목적]
성남청년대학은 성남 지역 청년들의 문화 교양 활동을 위해 1996년 설립되었다. 단체의 설립 배경을 살펴보면 1980년대 성남 지역의 대학생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광주 항쟁의 영향으로 성남에서 ‘성남지역대학생연합[약칭 성대연]’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야학 활동을 비롯해서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데 힘썼다. 1987년 6월 항쟁이 전개될 때 성남시청 앞에서 30,000여 명이 집회를 벌일 때 성대연은 적극적으로 앞장서 활동하였다.
이후 이 사건을 계기로 성대연은 성남시학우회연합[약칭 성학연]으로 발전하였다. 즉, 성학연은 성남 지역 대학생을 망라하는 단체로 발전하고, 한편으로는 성남 지역 청년들이 모여서 성남청년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후 1989년에 성학연은 직장 청년들과 함께 하기 위해 터사랑청년회로 확대 발전하면서 성남청년회와 함께 성남 지역을 대표하는 청년단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어 1992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터사랑청년회에서는 지역 청년들의 문화 교양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알고 성남청년학교를 열게 되었다. 이 학교가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1993년에는 성남청년회도 청년문화학교를 열기에 이르렀고, 1995년에는 분당 지역의 분당청년회도 만들어지고 분당청년문화학교도 개설하게 된 것이다. 1995년까지 터사랑청년회, 성남청년회, 분당청년회는 각각 매년 한 두 차례 씩 문화 교양 강좌를 열다가 1996년에는 이들 세 청년회가 하나로 합쳐서 문화 교양 강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성남청년대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변천]
1996년 제1기 성남청년대학 이후 성남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제2기 성남청년대학을 개설하고, 제3기 성남청년대학은 성남 지역만 아니라 용인시, 하남시, 여주시, 이천시 등으로 확대되면서 그 지역적 범위를 넓혔다. 이어 제4기 청년대학 때는 성남시, 용인시, 여주시, 이천시 지역의 청년들이 각 지역별로 청년대학을 개설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남청년대학의 모범적 사례가 알려지면서 노동자들은 노동자대학을, 주부들은 주부대학을 각각 개설하는 데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제5기 청년대학에는 각 지역별로 청년대학을 운영하였고, 성남 지역도 성남청년대학과 분당청년대학을 각각 별도로 운영,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성남청년대학은 자체적으로 확대, 발전함은 물론 경기도의 다른 지역과 청년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주부들에게 까지도 영향을 미쳐서 자기 지역의 주민 자치적 의식을 깨닫게 하는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주요사업과 업무]
일상적으로는 동아리 모임을 운영하고, 매년 1회 문화교양 강좌인 성남청년대학과 청년문화제를 개최하였다.
[활동사항]
2003년 12월 기준으로 회원 100여 명이 활동하였고, 동문은 2,000여 명에 달했다.
회원의 주 연령대는 20대와 30대이고, 대다수가 직장인이었다. 주로 직장인들이기 때문에 활동하는 시간은 거의 저녁이며, 8시~8시 30분 정도에서부터 시작했다. 회원들은 거주지와 직장이 다른 사람이 많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사무직, 일용직, 무직 등 직업도 매우 다양하였으며, 학력은 2003년 12월 현재 전문대졸 이상이 50% 이상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동아리 활동의 성격에 따라서 고등학생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성남청년대학은 2003년 5월 경기도에 비영리 단체로 등록이 되면서 CMS 방식으로 회비를 받아 운영하였고, 회장, 부회장, 사무국장, 방송국장, 연대사업위원장, 분과장 2명이 집행위원으로 구성되어 중요한 사안을 결의해 꾸려나갔다. 회장은 선거를 통해서 결정하며, 2003년에는 노래반의 김태욱이 회장을 맡았고, 2004년부터는 풍물반의 곽윤부가, 2007년부터는 우장순이 회장을 맡았다.
한편, 성남청년대학의 사회 활동은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출발하였지만, 구성원들의 다양화로 문화 예술 단체로 변화되었다. 특히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성남청년대학은 그 기초적 기반 활동이 이뤄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리 활동은 성남청년대학의 처음 개최 취지에서 일부 벗어나 대학의 소속감을 감쇄시킨 것도 사실이다. 여러 종류의 동아리 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노래 동아리는 처음에는 민중가요 동아리에서 출발했지만 회원들의 다양화로 대중가요도 부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중가요는 엄격히 제한하여 의식이 있고, 의미가 깊은 것으로 제한하여 부르도록 하였으며, 별도로 노래 교실을 마련하였다. 사진 동아리는 1999년과 2001년에 두 번의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수화 동아리는 수화의 기술을 배우고, 분기별로 저금통을 모아 저소득층 어린이를 위한 방과 후 공부방인 푸른학교를 후원하였다.
역사 기행 동아리는 생활을 등지고 떠나는 도피적 여행을 거부하고 우리의 생활을 재충전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활동하였고, 플래시 동아리는 인터넷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이 모여서 다양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익혔다. 풍물 동아리는 1995년 청년학교 출신 동아리 한소리를 시작으로 너름새, 나눔소리, 풍물사랑, 지킴이, 늘품 등 여러 풍물 동아리가 활동하였다.
르포 영상 동아리는 가정용 6mm 소형 캠코더의 대중화와 컴퓨터의 보급으로 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촬영하고 편집해서 영화도 제작하고, 뮤직 비디오도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들이 주인공인 영상, 우리들의 삶을 담은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등산 동아리는 각박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자연과 사람, 사회의 생명력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고, 봉사 동아리는 매달 1번 씩 독거노인들이 있는 시온의 집, 지체 장애인들의 참소망의 집 등에 봉사 활동을 나갔다.
그러나 인터넷과 문화 교육 시설의 증가로 청년대학 동아리 활동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다. 먼저 청년들의 만남과 단순한 취미 활동이 중심이 되었던 동아리들은 대부분 활동이 중단되었고 전문적인 매체를 활용하는 풍물, 사진, 디지털카메라, 영상, 역사기행 동아리가 활동을 이어갔고 동아리마다 포털사이트인 다음이나 네이버에 카페를 개설하여 온라인 모임과 오프라인 모임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성남청년대학은 2007년 5월 수정구 태평2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였으며, 기존에 있던 동아리 중 매체의 전문성을 키워오던 풍물반은 풍물굿패 우리마당으로 독립하였고, 영상미디어 교육 기관인 성남영상미디어공동체 늘봄을 신설하였으며, 그 외 동아리로 빛누리(사진), 줌인세상(디지털 카메라), 여행꾸러미(테마 여행)가 활동하였다. 이 시기 성남문화재단에서 추진하는 성남 지역 문화 예술 아마추어 동호회의 네트워크 조직인 사랑방문화클럽 사업에 성남청년대학 소속 동아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현황]
동아리들의 개별적 독자성 확대와 사랑방문화클럽의 활성화로 성남청년대학의 역할이 축소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2009년 4월 성남 지역 청년들의 문화 예술 동호회 연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던 성남청년대학은 해산을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