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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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상규 |
[정의]
고려 말·조선 초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차산(次山), 호는 용헌(容軒)이다. 고려 말 서법의 일가를 이룬 행촌(杏村) 이암(李嵒)의 손자이고, 밀직부사 이강(李岡)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판개성부사 곽연준(郭延俊)의 딸이고, 부인은 처음에 허금(許錦)의 딸이었고 둘째 부인은 최정지(崔丁智)의 딸이었다.
[활동사항]
어려서 매형이기도 했던 양촌(陽村) 권근(權近)에게 글을 배워 15세에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18세에 정몽주가 관장한 문과시험에 급제하였다. 사복시승(司僕寺丞)에 등용되고 공조·예조의 좌랑, 병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조선 개국 후에 지평이 되었고, 1400년(정종 2) 좌승지로 올랐다.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태종]을 도운 공으로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 되고, 철성군(鐵城君)에 봉해졌다. 대사헌·경기도관찰사를 지내고 1403년(태종 3)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이후 평양부윤(平壤府尹)·중군총제(中軍摠制)·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대사헌(大司憲)·한성부판사(漢城府判事) 등을 역임하였고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이 되었다. 1414년 영길도도순문사(永吉道都巡問使)를 거쳐, 이듬해 6월에 예조판서로 있다가 12월에 대사헌이 되었다. 1417년 판우군도총제(判右軍都總制)와 찬성을 걸쳐 이듬해 우의정에 올랐다. 1419년(세종 1) 영경연사(領經筵事)를 겸하였고, 1421년 1월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해 12월에 좌의정으로 승진되었고, 1425년에 등극사(登極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에 많은 노비를 불법으로 차지하였다는 혐의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공신녹권(功臣錄券)을 박탈당하고 여산(廬山)에 귀양 가서 1429년에 병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원의 저서로는 『용헌집(容軒集)』, 『철성연방집(鐵城聯榜集)』이 있다.
[묘소]
이원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산83 하단에 있었으나 이괄의 난 후에 파명당(破明堂)하였으나 후대에 복원하여 보존되어 오다가 분당신도시 개발로 경기도 광주시 목동으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세조 즉위 후 바로 직첩이 복구되었고 양헌(襄憲)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90년(정조 14)에 경상도 청도의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배향되었다가 1836년(헌종 3)에 안동의 명호서원(明湖書院)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