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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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法輪寺- |
이칭/별칭 | 태평동사지,탄리사지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은란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던 조선 인조 때 창건되고 1939년에 폐사된 법륜사 절터.
[개설]
법륜사 터는 성남 지역을 대표하던 법륜사가 있던 절터이다. 청나라 사찰지 『범우고(梵宇攷)』에 따르면 인조 때 창건된 절로 영창대군의 원찰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 위치는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금빛초등학교 주변으로 1970년대 동제종이 발굴되어 태평동사지 혹은 탄리사지로 알려진 곳이다.
[변천]
법륜사의 위치와 관련하여 정조대 편찬된 관찰 사찰지인 『범우고』에 영창대군묘 옆에 위치하며 인조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영창대군의 원찰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즉시 영창대군의 관봉(官封)을 회복시키고, 그의 묘를 경기도 광주[현재 성남시]로 이장하여 대군의 예를 지켰다. 영창대군의 묘는 1971년 성남시 광주대단지 개발 과정에서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로 옮겨졌다.
법륜사의 폐사에 대한 기록은 1939년 조선총독부 문서 「법륜사 이전 허가원에 관한 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법륜사는 일제 강점기에 봉은사의 말사로 편입되어 관리되었으며, 1939년 서울 창신동 지장암으로 재산이 옮겨지고 건물의 목재는 봉은사를 복구하는 자재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법륜사가 폐사되기 직전 조선 왕실의 종친 이규승(李奎承)[1835~?]은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을 위한 양대군제각을 설치했다. 이규승은 평원대군, 제안대군의 사손으로 양대군 묘소에서 가까운 망경암 칠성대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망경암마애여래좌상 및 글자들을 각자하고 법륜사와 봉국사에서 제의를 지내 왕실의 안녕과 복을 기원했다.
[위치]
법륜사 터는 1911년 토지대장에는 중부면 탄리 219번지라고 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위치를 가늠하면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477번지로, 동제종이 출토되어 태평동사지 혹은 탄리사지로 알려진 금빛초등학교 주변이다.
[현황]
법륜사 터 주변은 현재 상업 및 주거 시설이 밀집되어 있어 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매장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의의와 평가]
법륜사 터는 조선 후기 광주부 지도에는 영장산 아래 봉국사와 나란히 묘사될 정도로 광주부를 대표하던 사찰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절의 부재는 서울로 옮겨지고, 영창대군 묘, 평원대군 묘, 제안대군 묘 등도 광주대단지를 개발하면서 모두 이장되어 법륜사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2021년 ‘법륜사’ 명 신중도 및 복장품과 ‘법륜사’ 명 감로도가 경기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법륜사의 존재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법륜사 터는 명선·명혜 공주를 위해 지은 봉국사와 함께 조선 왕실 관련 사찰로서 성남시 불교문화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