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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381
한자 關內道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한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995년연표보기 - 관내도 설치
개정 시기/일시 1106년연표보기 - 관내도에서 양광충청주도로 개편
개정 시기/일시 1171년 - 양광주도와 충청주도로 분리
개정 시기/일시 1314년 - 양광도로 변경
관할 지역 관내도 - 경기도 양주시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이 포함된 고려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983년(고려 성종 2) 12목을 두었으며, 양주에는 양주목이 설치되었다. 993년 거란의 1차 침입이 있은 뒤인 995년(성종 14) 성종은 전쟁에 대비하고 지방 호족 세력의 통제와 중앙 집권의 강화를 위해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고자 했다. 개편 방향은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10도제와 절도사·도단련사·단련사·자사·방어사 등의 군사적인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성종은 전국을 10도로 재편하고 기존의 12목제를 12절도사제로 바꾸었다. 양주는 광주, 황주, 해주와 함께 10도 중 관내도(關內道)로 편제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권56, 지10 지리 양광도 남경유수관 양주]에 따르면 고려 초에 양주로 삼았고 995년(성종 14)에 비로소 10도를 정하였는데, 12주 절도사를 두면서 이름을 좌신책군(左神策軍)이라 하고 해주와 더불어 좌우2보(左右二輔)를 삼았다고 한다. 또한 관내도에 소속시켰다가 1012년(현종 3)에 2보(二輔)와 12절도를 폐하고 안무사(安撫使)로 고쳤다고 한다.

[내용]

995년 성종은 기존의 거점 중심 12목제를 대신하여 10도(道)로 편제하였다. 이때 개경 부근의 양주·광주·해주·황주 등을 묶어 관내도에 속하게 하였다. 그러나 양주가 관내도에 속하였다 하여 도의 장관으로부터 행정적 간섭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주 내의 행정은 양주목 당시 행정 체계를 유지하였다. 다만 중앙에서 파견되는 관원의 감찰을 받았다. 관내도에 속한 군현은 양주를 비롯해 29주 82현이었다.

[변천]

양주가 소속되었던 관내도는 하남도(河南道)·중원도(中原道)와 함께 1106년(예종 1)에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로 개편되었다. 또, 1171년(명종 1)에는 양광주도와 충청주도로 나누어졌다가 1314년(충숙왕 1)에 양광도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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