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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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郡 各 驛 賭租 實數 及 各 屯 己庚 兩年 條納 未納 區別 幷時直 成冊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서동일 |
[정의]
1900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 현황과 도조의 납부·미납부 실태를 기록한 책.
[개설]
「양주군 각 역 도조 실수 급 각 둔 기경 양년 조납 미납 구별 병시직 성책(楊州郡各驛賭租實數及各屯己庚兩年條納未納區別幷時直成冊)」은 1900년(고종 37) 12월 경기도에서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賭租)[고정된 소작료] 현황과 1899~1900년 그 실태를 조사해 기록한 책이다. 역(驛)은 중앙 관청의 공문을 지방 관청에 전달하고 외국 사신 및 관리의 여행·부임 시 말을 공급하던 곳이다. 경리원(經理院)은 1905년 일제가 대한 제국 황실의 재산을 침탈하기 위해 내장원(內藏院)을 내장사(內藏司)와 경리원으로 분리시킬 때 만들어진 기구이다.
[제작 발급 경위]
양주는 6개 역, 즉 영서역(迎曙驛)·쌍수역(雙樹驛)·평구역(平邱驛)·벽제역(碧蹄驛)·녹양역(綠陽驛)·구곡역(仇谷驛) 등 이북과 강원도로 연결되는 역이 밀집해 있고, 역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된 둔토도 많았다. 따라서 경리원은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 현황 및 도조의 납부 실태를 정확히 조사해 재정 수입을 정상화시키고자 했다. 「양주군 각 역 도조 실수 급 각 둔 기경 양년 조납 미납 구별 병시직 성책」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규22052].
[형태]
필사본. 1897년부터 1909년까지 경리원이 편찬한 『경리원가고건(經理院可考件)』[총 4책]에 실려 있으며 작성자는 경기봉세관(京畿捧稅官) 이태하(李泰河)이다.
[구성/내용]
기재 형식은 역의 이름, 전(田)·답(畓)의 면적, 도조(賭租) 총액, 조사를 통해 추가된 도조 액의 순서이다. 이에 따르면, 양주는 도조 총액이 386석 6승이고, 조사를 통해 추가된 도조는 113석 5두 8승으로, 그동안 도조를 내지 않은 둔토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1899년 당시 둔토로는 양둔(糧屯)·총둔(摠屯)·충훈둔(忠勳屯)·경둔(經屯)·용호둔(龍虎屯)·관둔(官屯)이 있었고, 땔감을 납부하는 동산(東山)으로는 아차산(峨嵯山)·낙천정(樂天亭)·장흥산(長興山)·천보산(天寶山)·해등촌산(海等村山)·대리산(代里山)·상하가오리(上下加五里)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양주군 각 역 도조 실수 급 각 둔 기경 양년 조납 미납 구별 병시직 성책」은 조선 말 황실 재정의 기반을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