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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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樘 |
이칭/별칭 | 대지(大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만용 |
출생 시기/일시 | 1518년 - 유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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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67년 - 유탱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01년 - 묘갈 건립 |
묘소|단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가마골로[부곡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고흥 |
대표 관직 | 제용감주부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대지(大支). 고려 때 시중을 지낸 유탁(柳濯)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승의교위(承義校尉)를 지낸 유지(柳漬), 증조할아버지는 진도군수를 지낸 유호지(柳好池), 할아버지는 도총경력(都摠經歷) 유의(柳依)이며, 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유충관(柳忠寬)이다. 어머니는 고령 신씨로 참찬을 역임한 신공제(申公濟)의 딸이다. 부인은 여흥 민씨로 동지(同知) 민반(閔泮)의 증손녀이며 참봉 민위(閔褘)의 딸이다.
유탱(柳樘)[1518~1567]은 4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선공감역 유몽사(柳夢獅), 승의부위 유몽표(柳夢彪), 생원 유몽웅(柳夢熊),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사헌부집의를 지낸 유몽인(柳夢寅)이다. 그중 유몽웅은 임진왜란 때 어머니를 보호하려다 왜군에게 죽어 정문(旌門)이 내려졌고, 유몽인은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지은이로 잘 알려져 있다. 딸은 도승지 홍천민(洪天民)에게 시집갔다.
[활동 사항]
유탱은 진사시에 급제하고 정릉참봉, 찰방, 군자직장(軍資直長)을 거쳐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로 승진하였다. 1567년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묘소가 있다. 1601년(선조 34)에 아들 유몽인이 글을 짓고 쓴 묘갈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