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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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安全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
집필자 | 이성운 |
입향 시기/일시 | 1504년 - 천안 전씨 전승문 전승무 형제 영암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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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천안 - 충청남도 천안시 |
입향지 | 엄길촌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
세거|집성지 | 천안 전씨 집성지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일원리|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
성씨 시조 | 전낙 |
입향 시조 | 전승문|전승무 |
[정의]
전섭을 도시조, 전낙을 중시조로 하고 전승문, 전승무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개설]
천안 전씨(天安全氏)는 조선 시대 영암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504년(연산군 10) 전승문, 전승무 형제가 강진군 퇴동 마을에서 서호면 엄길촌에 입향한 이후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입향조 전승문의 맏아들인 전윤은 흥양 현감과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충순위사정과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전방필의 네 아들 전몽일·전몽성(全夢星)·전몽진(全夢辰)·전몽태(全夢台)는 무인으로써 나라에 몸을 바쳤다. 특히 전몽성은 1583년 별시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 고경명 아래에서 금산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함평 현감을 지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아우인 전몽진, 김덕흡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하던 중 영암 해암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숙종 때 병조 참의에 추증되었고, 영암의 장동사(長洞祠)에 아우 전몽진과 함께 배향되어 영암 출신의 충신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밖에도 전환은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며, 전광정은 1801년(순조 1)에 문과에 급제했다. 전영택은 1827년(순조 27) 정해 식년시 문과에 급제, 전종행은 1834년(순조 34년) 갑오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소격서령을 제수받았다. 전종태는 고종 때 현의 현감 겸 제주진영 병마도위를 역임하였다.
[연원]
도시조 전섭(全聶)은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 온조(溫祚)가 백제를 개국할 때 공을 세워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으며, 전섭의 16세손인 전낙(全樂)은 927년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을 위기에서 구하고 신숭겸과 함께 순절하였다. 그 후 삼사 좌복야(三司左僕射)에 추증되고 천안부원군(天安府院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전낙을 중시조로 모시고 천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천안 전씨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판결사공파, 대제학공파, 삼재공파, 두평군파, 문효공파로 갈라져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입향 경위]
강진군 작천면 퇴동 마을에 세거하던 두평공파 후손 전승문, 전승무 형제가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1504년 영암군 서호면 엄길촌에 터를 잡으면서 자손이 대대로 영암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영암 전역에 313가구 759명이 살고 있다. 서호면 엄길리, 군서면 월곡리에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천안 전씨의 문중 사우인 장동사[전라남도 기념물 제109호]가 있는데, 전몽성과 아우인 전몽진, 전몽태를 배향하고 있다. 서호면에 전몽성, 전몽진의 충절과 전몽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한 전씨 충효문[전라남도 기념물 제71호]이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