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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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州玄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
집필자 | 박선미 |
본관 | 연주 - 평안북도 영변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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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구림 마을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서구림리 |
세거|집성지 | 학계리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
성씨 시조 | 현담윤 |
입향 시조 | 현윤명 |
[정의]
현담윤을 시조로 하고 현윤명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개설]
연주 현씨(延州玄氏)는 조선 시대 영암에 입향한 세거 사족으로, 조선 전기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로 입향한 현윤명(玄允明)의 후손들이 향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현윤명의 증손 현건(玄健)은 구림에서 동족 기반을 다지는 데 노력하였으며, 구림 대동계 중수에 참여하고 회사정(會社亭) 건립을 주도했다. 그리고 현건의 손자인 현징(玄徵)은 1660(현종 1)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참봉까지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죽림정(竹林亭)을 짓고 선비들을 가르쳤다. 현윤명의 25세손 현기봉(玄基奉)은 부의 기반을 닦았으며, 현기봉의 아들인 현준호(玄俊鎬)는 호남 은행을 창설하고 간척 사업을 통해 경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연원]
연주(延州)는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의 옛 이름이며 영변은 영주(迎州)와 무주(撫州)가 합쳐진 지명이다.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연주에 토착한 세력으로, 고려 의종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으며 연산군(延山君)[연산은 연주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현담윤을 시조로 하고 연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현담윤의 아들 현덕유(玄德裕)를 시조로 한 창원 현씨, 3세손 현원미를 시조로 한 순천 현씨, 9세손 현규(玄珪)를 시조로 한 성산 현씨로 분파되었지만 1747년 『정묘보(丁卯譜)』를 편수할 때 연주 현씨로 단일화하였고, 1982년 『임술보(壬戌譜)』 간행 때 문중의 합의에 따라 본관을 연주로 통일하였다.
[입향 경위]
현윤명은 현담윤의 12세손으로 충청도 천안에 거주하였는데, 선략장군부사직을 임명받으면서 영암에 내려오게 되었다. 이후 18세기에 현윤명의 9대손 현진택이 지금의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으로 이주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현황]
2012년 현재 학산면 학계리의 56가구 중 절반가량인 25가구가 연주 현씨이다. 연주 현씨는 학산면에 있는 재실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에 시제를 지낸다.
[관련 유적]
영암 지역 연주 현씨 관련 유적으로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죽림정(竹林亭)이 있다. 죽림정은 현징(玄徵)[1629~1702]이 1678년(숙종 4)에 시종면 내동리에 있던 취음정(就陰亭)을 서구림리로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