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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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秉植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윤미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4월 21일 - 조병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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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0일 - 조병식 영암에서 독립 만세 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5일 - 조병식 광주 지방 법원 장흥 지청에서 징역 1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6월 27일 - 조병식 대구 복심 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어 옥고를 치름 |
몰년 시기/일시 | 1926년 9월 11일 - 조병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6년 - 조병식,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조병식,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조병식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1919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조병식(曺秉植)[1892~1926]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 및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동구림리(東鳩林里)이다. 1919년 영암 지역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조병식은 1919년 4월 7일부터 9일 사이의 기간에 영암군 군서면사무소에서 박규상(朴奎相)·최기준(崔琪焌)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목적으로 「독립 선언문(獨立宣言文)」 500여 매와 『독립 신문(獨立新聞)』 500여 부, 「독립가(獨立歌)」 100여 매를 비밀리에 등사하여, 4월 10일에 영암 보통학교(靈岩普通學校) 학생 300여 명의 독립 만세 시위에 제공하는 등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조병식은 1919년 5월 15일에 광주 지방 법원 장흥 지청에서 출판법 및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고, 6월 27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병식의 공훈을 기려 1986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