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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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在洪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윤미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8월 25일 - 김재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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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0일 - 김재홍 영암 독립 만세 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7월 7일 - 김재홍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름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7월 28일 - 김재홍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3년 - 김재홍,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재홍,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김재홍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에서 만세 운동을 주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재홍(金在洪)[1892~1938]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해창리(海倉里)가 본적이며, 1919년 4월 10일에 펼쳐진 영암 지역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다.
[활동 사항]
김재홍은 1919년 4월 10일 영암 장날에 펼쳐진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고, 직접 참가하였다. 김재홍은 당시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면서기로 재직하면서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 계획에 참가하였으며, 동료 직원 최민섭(崔旻燮)과 함께 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 선언문(獨立宣言文)」 600여 매, 태극기 50여 매, 『독립 신문(獨立新聞)』 500여 매, 「독립가(獨立歌)」 100여 매를 비밀리에 등사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9년 4월 10일 영암 장날에 수많은 시위 군중이 회사정(會社亭) 광장에 모이자, 김재홍은 미리 만들어 둔 태극기 등의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이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김재홍은 만세 운동 도중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7월 7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재홍의 공훈을 기려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