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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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基奉 |
이칭/별칭 | 치도(致道),학파(鶴坡)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윤미 |
출생 시기/일시 | 1855년 9월 4일 - 현기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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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현기봉 해동 물산 주식회사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5월 1일 - 현기봉 광주 고등 보통 학교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현기봉 조선 생명 보험 주식회사 설립 |
몰년 시기/일시 | 1924년 7월 7일 - 현기봉 사망 |
출생지 | 현기봉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
묘소 | 현기봉 묘소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
성격 | 지역 유지|친일파 |
성별 | 남 |
본관 | 성산 |
대표 경력 | 중추원 참의 |
[정의]
근대 영암 지역의 부호이자 친일 기업인.
[개설]
현기봉(玄基奉)[1855~1924]은 영암군 학산면 출신으로 자는 치도(致道), 호는 학파(鶴坡)이다. 영암 지역의 대표적인 부호인 현준호의 부친이다. 일제 강점기 유지로서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여러 가지 친일 행적을 남겼다.
[활동 사항]
1891년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영암 향교 장의, 영암 향약소 도약장(鄕約所都約長), 무안부 조선민단장(務安府朝鮮民團長), 영암군 사립 구림 학교장, 목포 사립 유치학교장 등을 맡아 영암 지역의 유지로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안군 잠업 전습소장, 목포 신흥 철공 주식회사 사장, 광주 농공 은행 취체역, 목포부 무안군 연합 물산 품평회 협찬회 부회장, 조선 식산 은행 상담역, 경성 해동 물산 주식회사 사장, 목포 창고 주식회사 사장 등을 맡아 경제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목포부 참사, 명치 신궁 봉찬회 조선 지부 위원(明治神宮奉讚會朝鮮支部委員), 제국 군인 후원회 특별 회원(帝國軍人後援會特別委員), 전라남도 참사, 전라남도 평의회 의원, 충추원 참의 등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에 협력하는 여러 직책을 역임한 바 있다.
지주로서 여러 가지 선행을 베풀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1888년과 1889년에 대기근이 발생하자 수백 석의 쌀을 베풀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1914년에는 현 신안군 비금도 주민들이 2년에 걸친 흉작으로 고통을 받자 일천 석의 쌀을 풀어 섬 주민들을 지원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감격하여 그 공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에 협력한 친일 행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구분되고 있다. 1917년 명치 신궁 봉찬회장(明治神宮奉讚會長)으로부터 헌금에 적극 협력 이유로 감사를 받았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조선총독부의 협조 요청에 응하여 나주·무안·제주도 등 여러 지역에서 시위를 진정시키기 위한 시국 강연을 하였다.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 공로자 명감』에 아들인 현준호와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2009년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