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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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存養樓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지민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33년 - 존양루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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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1년경 - 존양루 신축 |
현 소재지 | 존양루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성격 | 누각 |
양식 | 소로 수장식 |
정면 칸수 | 4칸[우측 반 칸 퇴] |
측면 칸수 | 1칸[전면 반 칸 퇴] |
소유자 | 전주 최씨 영암 종중 |
관리자 | 최연창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개설]
존양루(存養樓)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가 영보리에 정착한 후에 학문 연마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연촌은 1405년(태종 5)에 문과에 급제한 후 남원 부사를 끝으로 영보 마을에 입향하였다. 그후 다시 1452년(문종 2)에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으나 다음 해에 사직하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존양루의 현판은 안평 대군의 친필이라고 전하며 ‘존양’의 의미는 ‘하늘이 준 본심을 잃지 않고 착한 성품을 기른다.’는 뜻이다.
[위치]
영보 마을 최연창 가옥의 같은 부지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최연창 가옥은 최덕지가 입향하여 지은 종가집으로 존양루 역시 안채, 곡간채 등 다른 살림용 건물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변천]
존양루가 처음으로 건립된 시기는 최연창 가옥이 조성된 1400년대 초 무렵이다. 그 후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훼손된 것을 7세손 최연이 1633년(인조 11)에 중수하였다. 그 뒤 1971년경에 부엌의 아궁이에서 발화한 화재로 일부가 크게 전소되어 전면 신축하는 개념으로 새로 지었다. 그래서 1633년에 중수된 이후 300년 넘게 유지해 온 문중 누각이 지금은 사랑채 형식의 건물이 되었다.
[형태]
1971년경에 새로 짓기 전의 본래 존양루는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규모는 현재의 모습과 같으나 평면과 구조는 크게 달랐다. 즉 좌로부터 부엌 1칸, 중앙에 2칸 온돌방, 그리고 맨 우측에 누마루 1칸이 있었고, 온돌방과 누마루 전후로는 반 칸 퇴를 두었다. 즉 ‘존양루’라는 당호에 맞는 누정 형식의 건물이었다. 누각은 방 쪽보다 반 층 정도 바닥 높이가 높아 앞쪽 툇마루에서 계단으로 오르내렸다.
현재 존양루 내부는 부엌이 없고 좌측으로 2칸 온돌방, 우측으로 창호가 있는 2칸의 대청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는 5량 가구(架構)의 소로 수장[도리나 장여의 밑에 소로를 받쳐서 장식한 구조] 형식이다. 기둥은 전면 퇴주만 두리기둥을 사용했고 나머지는 네모진 기둥을 썼다.
[현황]
현재 최연창 가옥은 사랑채 형식으로 사용 및 관리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문중의 각종 행사를 이곳에서 치렀다고 하나 근래에 들어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건물 정면에는 ‘존양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존양루는 6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안고 있는 영암 지역의 유일한 문중 누각이다. 온돌방과 부엌까지 갖춘 상당히 기능적으로 지어진 누각이었으나 최근에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이 되어 건축적 가치가 상실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종손인 최연창이 옛 존양루 모습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어 과거 이 지역 문중 누각의 실체를 상당 부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