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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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巖永保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29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민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30년경 - 영암 영보정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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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9년 12월 30일 - 영암 영보정 보물 제205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암 영보정 보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암 영보정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296 |
성격 | 누정 |
양식 | 팔작지붕 이익공식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사유 |
관리자 | 전주 최씨|거창 신씨 존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개설]
영암 영보정(靈巖永保亭)은 구림의 회사정, 장암의 장암정과 함께 영암의 대표적 향약[동계] 집회소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1년에는 이곳에 영보 학원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에게 항일 정신과 구국 정신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영암 영보정은 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5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변천]
조선 초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와 사위 신후경이 함께 건립한 정자로 처음 건립한 연대와 장소는 불명확하다. 그 후 연촌의 후손과 소은(素隱) 신천익(愼天翊)[1592~1661]이 1630년경에 영보리로 옮기면서 현재의 규모로 새로 꾸미었다.
[위치]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영보 마을 입구에 묘좌유향(卯坐酉向)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보 마을 가까이에는 최연창 가옥[연촌 고택]과 최성호 가옥[중요 민속문화재 제164호]이 있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중앙의 3칸, 후면으로 측면 1칸에는 마루방을 꾸몄으며 나머지 부분은 모두 우물마루로 된 대청을 두었다. 마루방 위로는 장암정과 같은 다락을 두었다. 구조는 두리기둥을 세운 5량 가구(架構)이며 공포는 전면을 이익공식(二翼工式), 후면을 초익공식(初翼工式)[익공 쇠서가 한 개로 짜인 공포]으로 꾸몄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지붕 네 귀에는 무엇을 받치거나 버티는 데에 쓰는 굽은 기둥인 활주를 세웠다.
[현황]
영암 영보정은 2013년 현재도 마을의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매년 5월 5일에는 풍향제(豊鄕祭)라는 마을 축제를 이곳에서 개최한다. 건물의 보존 상태는 지속적인 관리로 양호한 편이며 정자의 앞뜰에는 약 400년 된 보호수가 있다.
[의의와 평가]
5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정자로 특히 어려운 근대기에 신교육을 담당했던 교사로서 더욱 의의가 있다. 건물 규모도 향교의 강당만큼 매우 크며 조형성도 우수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