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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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婚姻式 |
이칭/별칭 | 혼례식,결혼식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박종오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결혼하는 두 사람이 혼례를 올리는 날에 행하는 의례.
[개설]
혼인식 은 부부 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으로, 결혼식 또는 혼례식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는 두 사람이 부부로 결합하는 통과 의례로, 개인 간 결합뿐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결합을 의미한다. 영암 지역의 혼인식은 초행(醮行)에서 초야(初夜)에 이르는 전통적인 절차를 통하여 성혼하는 전통 혼인식과, 전문 예식장 등에서 서양화된 전형적인 식순에 따라 치르는 현대식 혼인식이 있다.
[연원 및 변천]
혼례 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혼례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 시대로 보인다. 고려 말에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수용하면서 그 바탕을 갖기는 하였으나, 지배 계층의 예법으로 규정되어 시행된 때가 조선 전기이며 일반 서민의 예법으로 확산된 때는 조선 후기일 것이다.
그러나 대례상(大禮床)의 상차림을 보거나 신랑·신부가 서로 술잔을 나누는 합근지례(合卺之禮)와 서로 절하는 교배지례(交拜之禮)용을 보더라도 그러한 내용은 『주자가례』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고려 시대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의 전통 혼인식이 어느 정도는 정형화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이른바 신식 결혼식을 행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예식장에서 혼인식을 거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절차]
영암 지역에서 행했던 전통 혼인식은 지역에 상관없이 그 형식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초행(醮行)
혼인식 당일 신랑이 혼례식을 치르려고 신부 집으로 가는 것을 초행 또는 “장가간다.”라거나 “장가든다.”라고 한다. 신랑의 초행길에는 함을 지고 가는 사람과 짐꾼을 대동하며 집안의 남자 어른 중에서 한 사람을 상각[상객(上客)]으로 정하여 함께 간다. 신랑 일행이 신부가 사는 마을에 도착하면 바로 신부 집으로 들어서지 않고 이웃이나 신부 집의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이를 주점이라 하는데, 신랑 일행이 혼례식을 치르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고 신랑이 혼례복을 갈아입는 일종의 대기실이다.
2. 탈선(脫扇)
혼인식 시간에 맞추어 신랑은 주점에서 나와 신부 집으로 이동하는데, 부채로 얼굴을 가린다. 이때 마을 주민들은 신랑의 부채를 빼앗으며 장난을 거는데, 신랑이 부채를 빼앗기면 그 부채로 신랑의 팔목이나 손등을 때리며 놀린다. 그래서 신랑은 부채를 빼앗기지 않도록 유의하고, 부채를 빼앗겼을 때에는 손을 재빨리 숨긴다. 장난이 심한 마을에서는 부채를 빼앗고 나서 돌려주지 않고 돈이나 담배를 요구하기도 하여 주점에서 신부 집에 들어서기까지 두세 시간이 걸리는 일도 있다.
3. 함(函)
함은 신랑 집에서 신부의 예복과 예물을 선물하는 것으로, 보통 신랑의 초행길에 함께 보낸다. 기본적으로 함 속에는 신랑 집에서 보내는 편지인 혼서지(婚書紙)와 예복, 예물이 들어가는데 집안에 따라 물품과 양은 다르다. 함의 맨 아래에는 혼서지를 넣는데, 신부는 혼서지를 평생 보관해 두었다가 부부 중 한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간 사람의 시신을 처리할 때 혼서지로 신을 만들어 신겨 보낸다.
함을 지는 사람은 특별히 아들을 낳고 부부 금슬이 좋은 사람으로 정한다. 신랑 일행이 주점에서 쉬는 동안 함을 지고 온 사람은 신부 집으로 들어가 함을 전하는데, 이때 신부 집에서는 아이를 잘 낳고 금슬이 좋은 ‘복 있는 사람’이 함을 받아 방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4. 전안례(奠雁禮)
신랑이 주점에서 신부 집으로 이동하면 함을 진 사람은 목기러기(木기러기)를 들고 신랑의 뒤를 따른다. 신랑이 신부 집 대문을 넘으면 신랑에게 목기러기를 건네고, 신랑은 목기러기를 품에 안고 혼례상 앞으로 가서 상 위에 올린다. 이를 전안례라고 한다. 목기러기는 보통 신랑 집에서 마련하여 함과는 별도로 신랑의 관복과 함께 상자에 넣어 가지고 가며, 주점에서 관복으로 갈아입을 때 꺼내어 혼례식에 사용한다.
5. 혼례상
영암 지역에서는 혼례를 초례라고도 하므로 혼례상을 초례상이라고도 한다. 혼례상은 보통 마당 가운데에 놓으며 신랑과 신부가 동서의 방향으로 설 수 있도록 상의 방향을 맞춘다. 상 위에는 암수 한 쌍의 닭을 움직이지 않도록 다리와 날개를 묶거나 보자기에 싸서 양쪽에 나누어 놓는다. 닭 옆에는 동백나무·대나무·소나무 가지를 꽂은 화병을 하나씩 놓는다. 상 가운데에는 목화씨·팥·콩·쌀·밤을 한 접시씩 놓고 이른 새벽에 떠 놓은 정수(淨水)도 한 그릇 놓는다. 영암 지역에서는 초례상 위에 음식이나 떡은 올리지 않는다. 혼례가 모두 끝나면 상 위에 있던 팥과 쌀을 주변에 뿌리는데, 잘 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 한다.
6. 혼례식
신랑이 목기러기를 품에 안고 신부 집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혼인식이 시작된다. 신부는 신랑 집에서 보내 온 함에서 혼례복을 꺼내어 입고서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이때 신부 측 안내인인 인접(人接)을 두어 절하거나 이동할 때 신부를 돕도록 한다. 인접은 일가 중에서 아들을 잘 낳고 부부 금슬이 좋은 ‘복이 많은 사람’으로 한다.
혼례 의 순서는 의식의 순서를 적어 둔 글인 홀기(笏記)에 따라 이루어진다. 신랑이 품에 안은 목기러기를 혼례상 위에 올려놓으면 신부가 혼례상 앞에 선다. 신부가 혼례상 앞에 서면 신랑이 먼저 두 번 절을 하고 신부는 답배로 네 번 절한다. 절을 마치면 신랑과 신부가 혼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각자의 잔에 술을 따라 상대편으로 보내 준다. 술을 마신 후에는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로 혼례상에 있는 밤을 안주로 먹인다. 술잔을 교환하는 것은 총 세 번 반복하는데, 처음과 두 번째 잔은 놋쇠잔이나 사기잔을 사용하고, 마지막 세 번째에는 청실과 홍실을 묶어서 연결한 표주박잔을 사용한다. 표주박잔을 돌리고 나서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 두 표주박잔을 하나로 맞추면 모든 혼례식의 과정이 마무리된다.
7. 신랑의 큰상 받기
혼례식을 마치면 신부는 안채로 들어가고 신랑은 상각과 함께 사랑방이나 별도로 마련된 방으로 인도되어 큰상을 받는다. 큰상은 격식을 갖추는 의미로 준비하는데, 교자상 위에 제사를 지내듯 밥·과일·육류·어류 등의 음식을 골고루 차린다. 큰상의 음식은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전이나 간단한 반찬만 의례적으로 먹고 나머지 음식은 모두 광주리나 바구니에 담아 상각이 본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도록 한다. 큰상을 받은 후에는 신랑과 상각은 신부 일가와 인사하고 서로 술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신부는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초야를 치를 시간을 기다린다.
8. 초야
초야, 곧 첫날밤을 치르는 방은 대개 안방인데, 가족이 미리 별도로 준비한 이부자리를 방 가운데에 깔아 둔다. 이때 간단히 술상도 준비해 두는데, 보통 술 한 병과 초례상에 올렸던 밤과 대추를 안주로 한다. 해가 지면 신랑이 먼저 초야를 치를 방으로 들어와 이불 위에 앉아 신부를 기다린다. 그동안 신부는 벗어 두었던 혼례복을 다시 갖추어 입고 신랑보다 조금 늦게 방으로 들어가 신랑과 마주 앉는다. 이때 비로소 신랑과 신부가 서로 제대로 얼굴을 마주 보게 된다.
신부는 신랑에게 술을 따라 준다. 서로 대화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앞으로 잘 살아 보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데, 신랑이 먼저 신부의 머리 장식을 풀고 혼례복을 벗긴다. 혼례를 치를 때 신부는 앞머리를 땋아 뒤로 넘겨 댕기를 드린 귀영머리[귀밑머리의 사투리]를 하는데, 신랑이 초야를 치를 때 귀영머리를 풀어 주어야 비로소 쪽진 머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영암 지역에서는 처녀와 총각이 결혼하면 “귀영머리 마주 풀었다.”라고 말하며, 재혼이면 여자가 처녀일지라도 남자가 첫 결혼이 아니므로 귀영머리 마주 풀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신랑이 신부의 혼례복을 벗기면 신부도 신랑의 혼례복을 벗겨 준다. 초야를 치를 때 신부의 일가친척이 몰래 방 안을 훔쳐보기도 하는데, 신랑이 초야를 잘 치르는지 살펴보려는 풍습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영암 지역은 생활환경이 변모하면서 과거에는 혼례식을 가정에서 치르던 것이 요즈음은 예식장에서 서양식으로 치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촛불을 밝히거나 폐백을 행하는 등 과거의 혼례식과 절충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요즘은 예식장에서 치르는 정형화된 혼례식 대신에 전통 혼례식을 행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획일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모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