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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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奎燮 |
이칭/별칭 | 인숙(仁俶)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7월 15일 - 권규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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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3월 - 권규섭 산남의진에 참여하여 활약함 |
몰년 시기/일시 | 1907년 10월 7일 - 권규섭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권규섭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7월 - 권규섭 추모비 건립 |
출생지 | 권규섭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781 |
활동지 | 권규섭 - 경상북도 일원[영천, 영일, 청송 등] |
묘소 | 권규섭 묘소 -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
소재지 |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 경력 | 산남의진 좌영장 |
[정의]
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개설]
권규섭(權奎燮)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좌영장으로 활약한 의병이다.
[가계]
권규섭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인숙(仁俶)으로, 1883년(고종 20) 지금의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권영식(權英植)과 어머니 경주 최씨(慶州崔氏)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권규섭은 1906년 3월 영천과 신녕에서 활동하던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조직된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가하였다.
그 후 1907년 4월 산남의진이 재차 거의할 시 좌영장으로 임명되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영천·영일·청송 등지에서 일본군과의 여러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07년 8월 정용기 대장을 비롯한 산남의진 본진 100여명과 함께 죽장의 매현으로 들어간 권규섭은, 9월 초 강릉으로 북상을 준비하던 중 일본군이 청송에서 죽장으로 이동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기습 공격하여 적을 섬멸할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이세기(李世紀) 부장이 일본군 취사반 인원을 주력부대로 오판하여 성급히 공격을 감행하다가 매복해 있던 일본군 영천 수비대의 역습을 받자 그는 정용기(鄭鏞基) 대장이 이끄는 본부대와 매복해 있던 부대들과 합류하여 입암으로 나아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그는 대장 정용기(鄭鏞基), 중군장 이한구(李韓久), 참모장 손영각(孫永珏)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묘소]
권규섭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산 15번지에 있었으나 2010년 5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제4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며, 2004년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신녕면 성환산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