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381 |
---|---|
한자 | 盈德莊陸寺乾漆觀音菩薩坐像 |
영어공식명칭 | Seated Lacquer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Jangyuksa Temple in Yeongdeok |
이칭/별칭 | 영덕 장육사 건칠관음보살좌상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72[갈천리 12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병선 |
제작 시기/일시 | 1395년 -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 제작 |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407년 -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 개금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4월 10일 -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보물 제993호로 지정 |
현 소장처 | 장육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72[갈천리 120] |
원소재지 | 위장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 산182-3 |
성격 | 불상 |
재질 | 한지 |
크기(높이) | 86㎝ |
소유자 | 장육사 |
관리자 | 장육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제993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장육사에 있는 조선 전기 불상.
[개설]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盈德莊陸寺乾漆觀音菩薩坐像)은 고려 조에 판사를 지낸 백진(白瑨)이 영해부사와 부민들의 시주로 태조 이성계와 왕비(王妃) 및 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1395년(태조 4)에 조성하였다. 1989년 4월 10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형태]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불상 안에서 발견된 원문(願文)과 개금묵서명(改金墨書銘)을 통해 1395년(태조 4)에 조성되어 1407년(태종 7)에 개금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86㎝, 앉은 높이는 79㎝이다. 고려조에 판사를 지낸 백진이 공덕주가 되어 영해부사 이귀산(李貴山)과 후임부사 심천우(沈天雨) 및 부민들의 시주로 조성되었으며, 이후 개금불사에도 백진이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와 비(妃), 그리고 세자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으로 처음에는 인근의 신기리[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있는 위장사(葦長寺) 선당(禪堂)에 봉안하였다가 위장사가 폐사(廢寺)되면서 장육사로 옮겨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불상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머리의 금동관에는 얇은 삼각형의 금동판에 꽃무늬 동판을 오려 붙인 것으로 관과 이마 사이는 머리칼이 띠처럼 되어 있으나, 머리 자체는 상투 대신 민머리로 기존의 고려 불상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가루를 발라 묻힌 다음, 속을 빼어버리는 일반적인 건칠불상과는 달리 한지(韓紙)를 두껍게 덧붙여서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은 사각형으로 날카로운 코에 눈은 길게 치켜세우고 있어 얼굴 전체는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 숙여진 상체는 건장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건장한 상체에 비하면 하체는 오히려 작아 보이지만 앉아 있는 범위는 넓다. 불상의 옷은 양어깨에 걸친 통견의(通肩衣)로 가슴에는 오각형의 독특한 가사 고리 장식과 띠 매듭을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고 왼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역시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전신(全身)의 영락장식은 화려하고 복잡한 구슬장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팔이나 등에까지 이어져 있다. 이러한 양식은 고려 말과 조선 초 당대 보살상의 편년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따라서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15세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보살상으로 이후에 만들어진 대구 파계사 목조관음보살상[1447년], 영천 은해사 운부암청동보살좌상[1516년]에 영향을 주었으며,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어서 고려 말 조선 초 보살상들의 연대 추정에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