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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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邱里元邱-洞祭 |
영어공식명칭 | Village Ritual in Wongu-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매년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영덕군의 영해면, 창수면, 축산면, 병곡면 지역을 원영해(元寧海) 지역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원영해 지역에는 동해안 지역에서 드물게 여러 곳에 반촌(班村)이 형성되었다. 영해 지역의 여러 반촌 중에서 원구마을에는 조선 후기 영해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으로 성장한 다섯 문중 가운데 영양남씨, 대흥백씨, 무안박씨 등 세 문중이 세거(世居)하고 있다. 원구마을에서는 마을 입구에 위치한 제당에서 각 문중을 대표하는 세 명의 제관이 정월대보름 자시 무렵에 동제(洞祭)를 주재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원구마을에는 이른바 영해 5대 문중 중에서 영양남씨, 대흥백씨, 무안박씨의 세 문중이 세거해 왔다. 이들 세 문중의 입향(入鄕)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중반에 이르는 동안 영양남씨, 무안박씨, 대흥백씨의 순으로 이루어졌다. 원구마을에 세거해 온 이들 세 문중의 성원들이 문과, 무과, 생원, 진사에 급제한 사람이 많아 원구마을은 영해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원구마을에서는 세 문중이 균형을 이루며 마을의 제반사를 운영해 왔다. 이는 동제에도 반영되어 원구마을에서는 세 문중에서 한 명씩 제관을 선정하여 동제를 주재해 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원구마을에서는 폐교가 된 원구초등학교 북쪽 들판에 열 그루의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다. 이 마을 숲은 영해면 소재지에서 영양 방면으로 이어진 지방도변에 있으며, 이곳에서 매년 정월대보름 자시 무렵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원래 이 숲에는 제당(祭堂)이 있었고, 제당 안에는 ‘원구동신(元邱洞神)’을 새긴 위패를 두었다. 동신(洞神)의 신체(神體)는 제당 뒤편의 느티나무였는데, 이 당목(堂木)이 고사(枯死)한 이후 제당도 허무는 것이 좋다는 주변의 권유로 허물었다. 제당을 허문 자리에 ‘원구동신’을 새긴 조그만 비석을 세웠다. 비석 주변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반원형으로 경계를 두었으며, 동제를 지내는 날에 비석 주변에 천막을 치기 위하여 철제 기둥을 세워 두었다. 이후 비석을 대신한 커다란 바위를 신체로 모시고 동제를 지내고 있다. 주민들은 이곳을 수구막이 혹은 골맥이로 부르고 있다.
[절차]
원구마을에서는 정월 초사흘에 제관(祭官)을 선정하는 것으로부터 동제 준비를 진행해 왔다. 제관을 선정하는 날을 청단일(淸壇日)이라 하며, 이날 원구마을을 구성하는 세 문중에서 한 명씩 제관을 선정한다. 선정된 제관들은 제관으로 선정된 당일부터 금기(禁忌)를 수행하다가 정월 열사흘부터 동제를 지낼 때까지 세 명의 제관이 도가(都家)에서 함께 생활하며 금기를 수행하였다. 이에 앞서 정월 열사흘에 동신을 모신 곳과 제관집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렸다. 제관들이 도가(都家)에 들어가는 열사흘과 동제를 지내는 열나흘에는 마을을 감싸 도는 남천에 있는 용당샘에서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였다. 동제의 제수(祭需)를 장만하고 제관을 대접하는 도가의 선정도 세 문중에서 윤번제로 담당해 왔다. 제수로는 명태, 꺽지, 가자미, 문어, 조기, 방어, 대구, 가오리 등 해산물을 많이 사용한다. 이 밖에도 대추, 밤, 배, 감, 사과 등의 과일과 닭, 대구포, 편 등의 제물을 갖춘 원구마을 동제의 제의 절차는 예전과 차이 없이 유교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관들은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유건으로 복식을 갖추고 자정을 넘긴 시각에 동제를 지낸다.
[현황]
원구1리의 일원적 제당 구성은 세 종족 집단이 균형을 이루고 균등하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 받는 종족 마을의 특성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한편 원구마을의 동제는 비교적 오랫동안 커다란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금기 수행은 크게 간소화되었다. 과거 용당샘에서 하던 목욕재계도 읍내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과거 동제를 지내고 난 뒤에도 제관들은 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흉한 것을 보지 않는 금기를 수행하였다. 세 명의 제관은 최소한 석 달 동안, 도가는 1년 내내 금기를 수행하였으나, 요즘에는 크게 간소화되었다. 특히 도가 수행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이제는 공동으로 제수를 장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