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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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基靑年會 |
영어공식명칭 | Punggi Youth Association |
이칭/별칭 | 영주청년동맹 풍기지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23년 11월 - 풍기청년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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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27년 11월 24일 - 풍기청년회 해체 |
개칭 시기/일시 | 1927년 11월 24일 - 풍기청년회에서 영주청년동맹 풍기지부로 개칭 |
최초 설립지 | 풍기청년회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
성격 | 청년단체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주 풍기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개설]
풍기청년회(豊基靑年會)는 1923~1924년경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일대에서 조직된 청년운동 단체이다. 풍기청년회는 1923년 1월 창립된 풍기소작조합과 활동 노선을 함께하고, 조선청년총동맹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활동하였다.
[설립 목적]
풍기청년회는 설립 시기가 명확하지 않아, 설립 당시 목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다른 청년회의 성격을 고려할 때, 토론회, 강연회, 야학과 강습회 등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청년운동의 계급성과 대중성을 내세우며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1927년 11월 24일 풍기청년회는 영주청년회와 함께 조선청년동맹의 군·부청년동맹 조직 방침에 따라 영주청년동맹으로 통합되었다. 이로써 풍기청년회는 영주청년동맹 풍기지부가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풍기청년회는 1923년 11월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유지와 일본인이 포함된 풍기구락부와 성격을 달리한다. 또 실력양성론에 입각해 문화운동을 표방하던 영주청년회와도 성격을 달리하였다. 풍기청년회는 소작농의 경제적 이익을 옹호하는 풍기소작조합과 활동 노선을 공유하며, 조선청년총동맹의 노선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1924년 풍기청년회는 전국적 단일 청년 단체인 조선청년총동맹의 창립을 위한 총동맹 발기 선언에 참여하였다. 총동맹 발기 선언의 내용은 “아 등은 계급적 대단결을 목표로 청년운동의 통일을 도하기 위하여 다음의 강령으로써 조선청년총동맹을 발기하노라”이다.
조선청년총동맹에 가맹한 풍기청년회는 1925년 2월 23일 경북 상주에서 개최된 경북지방청년대회 발기회의 발기 단체로 참여하였다. 경북지방청년대회 발기회에서는 1925년 2월 30일 경북 금릉청년회관에서 경북지방청년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다. 풍기청년회는 1925년 11월에 개최될 경북청년연맹 발기대회에 참가하고, 조선청년총동맹의 확대 강화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1925년 12월 20일 풍기청년회는 영주와 봉화의 사회단체들이 산업진흥·소비절약을 위해 영주청년회관에서 개최한 각 단체 대표 회의에 참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풍기청년회는 1920년대 중·후반 청년운동의 변화에 맞추어 영주청년동맹이 결성될 때까지, 계급적·대중적 성격을 나타낸 영주의 대표적인 청년운동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