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73 |
---|---|
한자 | 豊基榮州地區戰鬪 |
영어공식명칭 | Yeongju Punggi Battle |
이칭/별칭 | 풍기영주 전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50년 7월 14일부터 23일까지 영주 지역에서 국군과 북한군이 벌인 전투.
[개설]
풍기영주지구 전투는 1950년 7월 14일부터 23일까지 오늘날 경상북도 영주시 일대에서 국군과 북한 인민군 간에 치러진 전투이다.
[역사적 배경]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개전 이후 인민군은 빠른 속도로 남하하였고, 1950년 7월 6일 무렵에는 인민군 제8사단이 충청북도의 남한강 상류 지역까지 진출하였다. 또 인민군의 제5사단과 제766게릴라연대가 1950년 7월 초순 무렵 충청북도 단양군까지 진출하여, 당시 단양군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8사단은 죽령으로 후퇴하였다. 그런 가운데 국군 제8사단은 풍기영주지구로 밀려오는 인민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경과]
1950년 7월 14일 북한 인민군 제8사단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풍기 읍내로 들어왔다. 하지만 인민군 제8사단은 영주로 후퇴하는 것처럼 꾸미고, 인근 고지에 병력을 배치한 국군의 위장 전술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1950년 7월 14일 오후 5시 풍기로 들어온 인민군 1개 대대가 ‘풍기-영주 가도’를 따라 이동할 때 국군은 기습 공격을 펼쳐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1950년 7월 15일 새벽 2시 북한 인민군은 차량 30여 대를 앞세워 재차 풍기로 진입하였다. 이에 국군은 포병의 포격과 보병의 기습 공격으로 반격하였으며, 인민군에게 1개 연대 이상 병력 손실을 입혔다.
인민군 제8사단이 국군의 대항에 막히자, 북한 측은 충주에서 단양을 거쳐 풍기로 남하하고 있던 제12사단으로 국군 제8사단을 공격하였다. 이에 국군 제8사단은 영주군의 안정면 동촌리에서 부석면 용암리에 걸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1950년 7월 17일 북한 인민군이 야간 공격을 시도하자, 방어선 중앙부를 맡고 있던 국군 제21연대 1대대가 후퇴하였다. 이 때문에 방어선 간격이 벌어지게 되고, 점차 붕괴했다.
[결과]
국군 제8사단은 병력·무기·장비 등 절대적인 열세 상황 속에서도 인민군의 남하를 10일간 저지하였으나, 결국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1950년 7월 23일 아침 안동군 옹천으로 후퇴하였다. 이로써 인민군은 풍기영주지구를 점령하게 된다.
[의의와 평가]
풍기영주지구 전투는 6.25전쟁 초기 인민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치러진 전투이다. 비록 전력의 열세로 풍기영주지구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하였지만, 적의 남하를 지연시켜 이후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