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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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姓 |
영어공식명칭 | Fortress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인균 |
[정의]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이어져 살아오고 있는 성씨.
[개설]
토성 중 영주 지역에서 높은 벼슬과 학식을 겸비하여 명망이 높았던 대표적인 세거 성씨는 봉화정씨(奉化鄭氏), 순흥안씨(順興安氏), 풍기진씨(豊基秦氏)이다. 봉화정씨는 고려 때 호부령을 지낸 정공미(鄭公美)를 시조로 하며, 아들 정영찬(鄭英粲)이 비서랑을 지냈고 손자 정균(鄭均)이 검교군기감정을 지냈다. 증손자인 정운경(鄭云敬)[1305~1366]의 아들 정도전(鄭道傳)[1342~1398]은 후일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한 인물이다. 영주 입향조는 알 수 없다.
순흥안씨는 고려 보승별장으로 있었던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며, 순흥에 세거하였다. 안자미의 장남 안영유(安永儒)[1201~?]의 손자 안향(安珦)[1243~1306]은 성리학을 들여온 학자이자 명신으로 명망이 높다. 풍기진씨는 중국 태원 사람이며 당나라 고종 때 병부시랑으로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귀화하는 진필명(秦弼明)을 도시조(都始祖)로 한다. 15세손인 진질명(秦礩溟)은 고려 정중부의 난 때 절개와 의리를 세워, 기주부원군(基州府院君)에 봉해짐으로 기주[풍기]를 본관으로 삼았다.
[연원]
1. 봉화정씨
봉화정씨는 정공미를 시조로 하며, 현 경상북도 봉화군을 본관으로 한다. 봉화현에서 대대로 호장을 세습해 온 호족세력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검교밀직제학을 지낸 정운경, 문하시랑찬성사와 예문춘추관사를 지낸 정도전 등이 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고 기초를 세웠다.
2. 순흥안씨
순흥안씨의 시조인 안자미는 흥위위의 정7품인 보승별장으로 지냈으며, 안향의 현달로 상호군에 추봉되었다. 안자미는 순흥을 관향으로 삼아 삼 형제를 두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근재집』·「관동별곡」·「죽계별곡」으로 유명한 안축(安軸)[1282~1348], 성리학의 도입과 보급에 힘쓴 안향, 충숙왕 시기 순흥부원군의 호를 받은 안문개(安文凱)[1273~1338] 등이 있다.
3. 풍기진씨
풍기진씨는 나당전쟁 이후 신라에 귀화하여 태원백에 봉해진 진필명을 시조로 한다. 풍기진씨는 고려 시기 정중부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기주부원군에 봉해진 진질명에 의해 풍기에 세거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세종 때 예조참의를 지낸 진유경(秦有經), 지중추부사를 지낸 진동익(秦東益)[1773~?] 등이 있다.
[입향 경위]
1. 봉화정씨
봉화정씨가 영주에 입향한 시기와 경로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균이 영주 지역으로 이거 하여 정운경이 영주 지역에서 출생하여 자라고 만년에 은퇴하여 여년을 마쳤기 때문에 그 선대로부터 영주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2. 순흥안씨
순흥안씨는 시조인 안자미가 순흥을 관향으로 하여 세거하였다. 조선조에 들어 파주 금촌을 근거지로 삼아 생활하였다가 사화를 거치면서 흩어지게 되었다. 순흥에 살고 있던 순흥안씨는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크게 화를 입었다.
3. 풍기진씨
풍기진씨는 15세손인 진질명이 기주부원군에 봉해지며 본관으로 삼아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현황]
1. 봉화정씨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영주시에 사는 봉화정씨는 총 385가구이다.
2. 순흥안씨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영주시에 사는 순흥안씨는 총 1,010가구이다.
3. 풍기진씨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영주시에 사는 풍기진씨는 총 109가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