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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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竹 |
영어공식명칭 | Jukju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방용철 |
[정의]
삼국시대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개설]
죽죽(竹竹)은 158년(아달라이사금 5)에 죽령(竹嶺) 개통을 주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설화에는 장군이라고 한다.
[활동 사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 신라본기 제2의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편에는 “5년(158) 봄 3월에 죽령을 열었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때 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죽령이 처음 개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죽령을 개통하였던 배경과 과정, 주체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조선시대 문헌인 이황(李滉)[1501~1570]의 『퇴계집(退溪集)』이나 순흥읍지인 『재향지(梓鄕誌)』 등에 따르면, 죽죽이 이때 죽령 개통을 주관했다고 한다. 또 죽죽은 고갯길 개척에 힘을 다하고 순절했다고 한다. 그 외 죽죽과 관련된 조선 전기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죽령’의 지명 역시 죽죽의 이름을 따서 정하였으며, 죽령 서쪽에는 죽죽을 기념하는 죽죽사(竹竹祠)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158년 무렵 신라는 아직 영주 지역까지 진출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아달라이사금이 죽령을 개통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나 죽죽 관련 설화를 싣고 있는 『퇴계집』 및 『재향지』 등 문헌 내용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죽령의 개통 및 장악이 역사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그 역사(役事)와 관련된 설화가 영주 지역에서 기억되고 전승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죽죽은 신라시대 대야주(大耶州)[현 경상남도 합천군] 사람으로 642년(선덕여왕 11) 백제와 싸움에서 전사하였던, 사지(舎知)[신라 17관등 중 13위] 죽죽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