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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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濱 |
영어공식명칭 | Ryu Bin |
이칭/별칭 | 완원군(完原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367년 - 류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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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82년 - 류빈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386년 - 류빈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448년 - 류빈 사망 |
묘소|단소 | 종릉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 산173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 | 전한|응교|직제학|진보현감|경주부윤|영흥대도호부사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묘소가 있는 문신.
[개설]
류빈(柳濱)[1367~1448]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된 문신이다.
[가계]
류빈의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완원군(完原君)이다. 아버지는 보문각직제학을 지낸 류극서(柳克恕)[?~1388], 어머니는 진양부원군 하윤린(河允潾)[1321~?]의 딸 증 숙부인 진주하씨(晉州河氏), 할아버지는 완산백 류습(柳濕)이다. 류빈의 부인은 윤방익(尹邦益)의 딸 증 정부인 덕산윤씨(德山尹氏)와 우순(禹順)의 딸 증 정부인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활동 사항]
류빈은 1382년(우왕 8) 진사시에 급제하였는데,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과 동갑이자 동방(同榜)이다. 훗날 태종은 류빈을 비롯해 20명과 동갑계를 결성하였으며, 계원들에게 “지금 이 정미생 20인은 모두 나의 개국공신이니, 후손이 비록 잔열(殘劣)하더라도 정역(丁役)을 면제할 것이며, 혹 좋은 재주가 있는 자손이면 거용할 것이다”라는 교서를 내렸다.
류빈은 1386년(우왕 12)에는 맹사성(孟思誠)[1360~1438]·길재(吉再)[1353~1419]와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 개창에 공이 있어 개국원종공신으로 녹훈되었다. 관직은 전한·응교·직제학 등을 지냈으며, 외직으로는 진보현감·경주부윤·영흥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 효성이 지극해 아버지상 때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묘소]
류빈의 묘소는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있다. 구전에 따르면 류빈이 세상을 떠나자, 태종이 좋은 장소에 묘를 쓰라고 지관에게 지시하여, 지금 위치에 묘소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또 특별히 그 무덤을 종릉(鐘陵)이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태종은 영천군수(榮川郡守)가 매년 제물을 내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중지되었다고 한다. 현재 묘소의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류빈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1606년(선조 39)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후손 류영순(柳永順)이 묘소 수호를 위해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종릉재사(鍾陵齋舍)[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8호]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