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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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榮州柳濱墓碑-石物一括 |
영어공식명칭 | Bundle of Ryubin Headstone and Stone Figures for Tombs, Yeong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 산17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태환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367년 - 류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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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48년 - 류빈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448년 -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 묘소 석물 제작 |
건립 시기/일시 | 1606년 -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 묘비 제작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6년 10월 6일 -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7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 산173 |
성격 | 묘비|석물 |
관련 인물 | 류빈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138㎝|너비 62㎝ |
소유자 | 전주류씨 영흥공파 종중 |
관리자 | 전주류씨 영흥공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류빈의 묘비 및 석물.
[개설]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은 조선 전기 문신 류빈(柳濱)[1367~1448] 묘소의 묘비 및 각종 석물을 가리킨다. 류빈 묘비는 1606년(선조 39) 후손 류영순(柳永詢)이 경상도관찰사 재임 시절 건립하였고, 석물은 1448년(세종 30) 류빈이 세상을 떠나고 장례가 치러질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은 2016년 10월 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4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묘소의 주인공인 류빈의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완원군(完原君)이다. 1382년(우왕 8) 진사시, 1386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영흥대도호부사를 지냈으며, 조선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류빈은 전주류씨 영흥공파의 파조이기도 하다.
[건립 경위]
류빈은 1382년 훗날 조선 3대 태종으로 즉위하는 이방원(李芳遠)과 동갑이자 동방(同榜)이다. 이에 태종은 젊은 시절 자신과 동문수학한 20인과 함께 ‘정미갑계(丁未甲契)’를 결성하였는데, 이 중 류빈을 비롯해 18명이 나중에 개국원종공신으로 녹훈되었다. 즉위 후 태종은 이들에게 “이 정미생 20명은 모두 나의 개국공신이다. 후손이 비록 못났더라도 정역을 면제할 것이며, 쓸만한 인재는 등용해야 한다.”라는 수교를 내렸다. 이어 태종은 “이들의 후손들에게 징병과 부역을 면하고, 계원들의 묘는 임금과 같이 능으로 하라”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류빈이 78세로 별세하자 조정에서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아름다운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형국]의 묘를 찾아 예장하고, 종릉(鐘陵)[유릉(柳陵)]이라는 능호를 하사하였다. 또 영천군수(榮川郡守)가, 매년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다. 당시 류빈의 시신은 관군에 의해 500리[약 196.4㎞]에 걸쳐 운구되었는데, 이때 사용된 상여는 심한 부식으로 멸실되었고, 장식품 일부를 현재 소수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위치]
문수면행정복지센터에서 북쪽으로 적서교차로까지 2.5㎞가량 이동한 후, 국도제5호선을 타고 동쪽 문수교차로까지 2.6㎞ 정도 이동한다. 문수교차로에서 다시 남쪽 도로를 따라 유천마을까지 2.2㎞쯤 이동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동남쪽으로 향한 농로를 따라 500m가량 이동하면 종릉재사(鍾陵齋舍)가 자리 잡고 있다. 종릉재사는 류빈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설립된 재사로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은 그 뒤에 조성되어 있다.
[형태]
류빈 묘의 하단부는 화강암으로 3단의 호석(護石)을 만들어 8각 형태로 무덤 전체를 두르고 있다. 류빈 묘의 정면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있고, 그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다. 그 외 주가석(酒架石)·촉대석(燭臺石)·축판석(祝板石)까지 완비되어 있으며, 그 앞쪽 좌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영주 류빈 묘비는 6대손인 경상도관찰사 류영순이 1606년에 찬술하여 세웠는데, 앞·뒷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으나, 뒷면은 마멸이 심한 상태이다. 영주 류빈 묘비의 높이는 138㎝이며, 너비는 62㎝이다.
[금석문]
영주 류빈 묘비 전면에는 ‘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행통정대부영흥대도호부사류공지묘 증정부인덕산윤씨지묘(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行通政大夫永興大都護府使柳公之墓贈貞夫人德山尹氏之墓)’라고 쓰여 있다.
[현황]
2008년 종릉과 종릉재사의 변천을 기록한 ‘종릉수묘기(鍾陵修墓記)’가 인근 종릉재사 앞에 세워졌다.
[의의와 평가]
영주 류빈 묘비 및 석물 일괄은 조선 전기의 독특한 무덤 양식을 띠고 있으며, 다른 묘소에서는 보기 드문 주가석·촉대석·축판석까지 설치되어 있다. 영주 류빈 묘비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선 전기 사대부 무덤의 양식 변화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