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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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介立 |
영어공식명칭 | Lee Gae-rip |
이칭/별칭 | 대중(大仲),역봉(櫟峯),성오당(省吾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환 |
출생 시기/일시 | 1546년 - 이개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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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7년 - 이개립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86년 - 이개립 참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5년 - 이개립 낭천현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6년 - 이개립 산음현감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04년 - 이개립 선무원종공신 3등 녹훈 |
몰년 시기/일시 | 1625년 - 이개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64년 - 이개립 의산서원 제향 |
출생지 | 이개립 출생지 -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
거주|이주지 | 이개립 이주지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
거주|이주지 | 이개립 이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 |
묘소|단소 | 이개립 묘소 -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 |
사당|배향지 | 의산서원 -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용주로342번길 11-20[갈산리 876]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대표 관직|경력 | 산음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개설]
이개립(李介立)[1546~1625]은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천거로 산음현감 등을 지냈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향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가계]
이개립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중(大仲), 호는 역봉(櫟峯)·성오당(省吾堂)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 이해(李𥩲), 어머니는 권예(權禮)의 딸 예천권씨(醴泉權氏), 할아버지는 부호군을 지낸 이선동(李善童), 증조할아버지는 대호군을 지낸 이욱(李昱)이다. 부인은 진사(進士) 민운서(閔雲瑞)의 딸 영천민씨(榮川閔氏)이다. 이개립이 경주이씨 가문의 영주 입향조가 된다.
[활동 사항]
이개립은 1546년(명종 1) 경상도 용궁현 대죽리(大竹里)[지금의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에서 출생하였다. 박승임(朴承任)[1517~1586]과 김성일(金誠一)[1538~1593]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이때 아버지 이해가 병에 걸리자 직접 변을 먹으며 6개월간 간호하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정성껏 시묘하였다. 이에 경상도관찰사가 이개립의 효행을 조정에 보고하려 했으나, 이개립이 직접 만류하였다. 이후 어머니를 모시고 경상도 예천군 금당곡(金堂谷)[지금의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으로 이주하였다.
이개립은 1586년(선조 19) 조행(操行)으로 발탁되어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어머니 봉양을 이유로 사직하였고, 1591년에는 장현광(張顯光)과 함께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군사를 위한 둔전이 설치되었는데, 이개립이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1595년에는 류성룡(柳成龍)이 여러 인재를 지방관으로 추천하였는데, 이때 이개립은 낭천현감에 제수되었지만,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이개립은 1596년(선조 29) 산음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체찰부 종사관 황여일(黃汝一)[1556~1622]에 의해 향병대장을 맡아 관군과 의병을 수합해 적들을 막았다. 이때 관군을 지휘하던 경상도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1564~1624, 김경서(金景瑞)]는 향병대장 이개립이 적군의 목을 베고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자, 화를 내며 조정에 장령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무계(誣啓)하였다. 이 때문에 이개립은 체포되었으나, 승지 한준겸(韓浚謙)[1557~1627]의 도움으로 벌미(罰米)를 내고 풀려났는데, 조정 관원들이 녹봉을 내어 도와주었다.
이개립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문인으로는 김응조(金應祖)[1587~1667]·조함일(趙咸一)·이양(李崵)·박수약(朴守約)·박수검(朴守儉)[1629~1698]·이홍경(李弘經)·채이복(蔡以復) 등이 있다. 만년에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갈산(葛山)[지금의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로 이거함으로써, 그 후손들이 영주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다.
[학문과 저술]
이개립의 문집으로 3권 2책의 『성오당집(省吾堂集)』이 전한다.
[묘소]
이개립의 묘소는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 석종산(石宗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개립은 1604년(선조 37)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으며,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1664년(현종 5) 의산서원(義山書院)[영주시 장수면 갈산리]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