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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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Goindol |
영어의미역 | Dolmen |
이칭/별칭 | 지석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하문식 |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중 하나.
[개설]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예부터 고엔돌·되무덤·도무덤 등으로 부르거나 거북바위·독바위·칠성바위·마귀할멈 바위 등으로 불려진다. 대부분 강이나 바닷가 옆의 평지, 구릉 지대에 있으며 드물게는 산기슭이나 산마루에 있는 경우도 있다. 기능에 따라 제단 고인돌과 무덤 고인돌로 구분할 수 있다.
모양에 따라 탁자식·개석식·바둑판식 고인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제주 지역에서만 찾아지는 독특한 모습의 고인돌이 있다. 여러 장의 판자돌이 덮개돌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받치고 있는데 무덤방은 땅 위에 드러난 상태이며, 제주식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우리나라에서 고인돌이 축조된 시기는 기원 전 15세기 이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분포와 입지]
용인 지역에서는 왕산리를 비롯한 12곳에서 18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으며 현재 15기가 분포하고 있다. 이곳의 고인돌은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것은 없고 모두 지표 조사 과정에서 찾아진 것이기 때문에 그 외형적인 것만 알 수 있는 실정이다.
입지 조건을 보면 거의가 물줄기 옆의 평지나 그 부근의 구릉 지대에 자리하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 고인돌처럼 드물게는 얕은 야산의 산 능선을 따라서 분포하는 경우도 있다.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 고인돌 유적은 경안천의 샛강인 주북천이 흐르는 구릉 지대에 위치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숲원이·배터골·배모루라고 부르고 있어 물줄기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용인 지역의 고인돌 유적 가운데에는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의미를 부여한 경우가 여러 곳 있다. 특히 주북리의 탁자식 고인돌 옆에는 고인돌의 덮개돌로 보이는 손질된 큰 돌들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이곳에 다른 지역처럼 여러 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곳은 편평한 구릉 지대에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고 옆에 물줄기가 있어 다른 지역에서 조사된 고인돌 유적과 비교하여 볼 때 당시의 집터 유적이 찾아질 가능성이 많다.
고인돌의 분포에 대한 빈도 관계를 보면 2기 이상 있는 곳이 50% 정도 되며, 백암면 근삼리와 포곡읍 유운리에는 현재 2~3기의 고인돌이 있지만 칠성바위라고 부르고 있어 처음에는 7기 정도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용인 지역의 고인돌은 한 곳에 여러 기가 분포하고 있는 지역적인 특징이 보인다.
이렇게 한 곳에 고인돌이 밀집 분포하고 있는 것은 당시 사회의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특히 근삼리 고인돌은 입지 조건과 덮개돌의 크기로 볼 때 축조 과정에서 많은 노동력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자료를 통하여 당시의 사회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특징]
용인 지역의 고인돌에서 찾아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강 유역의 다른 지역보다 탁자식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탁자식 고인돌이 조사된 유적으로는 백암면 근삼리, 기흥구 상하동, 양지면 주북리 등이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굄돌의 높이가 상당히 낮고 덮개돌의 두께가 두꺼워 전체적으로 묵직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모현읍 왕산리와 양지면 주북리의 고인돌을 들 수 있다. 이 두 고인돌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무덤방을 이룬 마구리돌도 조사되어 무덤방의 형태나 축조 과정은 물론 그 역할까지도 알 수 있다.
현재 용인 지역에서 조사된 이러한 고인돌의 외형적인 모습은 마구리돌이 굄돌처럼 덮개돌의 무게를 직접 받지 않고 양쪽 굄돌 사이에 끼인 채 단지 무덤방의 한 쪽 벽을 이루는 기능만 하였던 것 같다. 마구리돌의 이러한 기능은 탁자식 고인돌이 많이 조사된 북한 지역이나 중국 동북 지역에서는 흔하게 조사되는 것으로 서로 비교 검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용인 지역의 고인돌은 발굴 조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토 유물에 대한 조사 보고 자료가 거의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모현읍 왕산리의 탁자식 고인돌에서 화살촉 1점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이나 화강암질 편마암을 이용하였으며 크기는 길이가 300㎝쯤 되는 것이 많다. 또 덮개돌에 구멍이 파인 것이 조사되었는데 판 수법은 갈아서 판 것과 쪼은 다음 간 것으로 크게 구분된다.
큰돌에 대한 숭배의 표현으로 고인돌을 위하는 경우는 상하동 고인돌 유적에서 조사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1기의 탁자식 고인돌이 있지만 처음에는 할아버지 지석(상지석)과 할미 지석(하지석)으로 부르는 탁자식이 2기 있었다. 이 고인돌은 마고 할머니와 관련이 있으며 유적 앞에 당집을 세우고 음력 10월에 마을 제사를 지낸다.
포곡읍 유운리 고인돌 옆에는 선돌이 같이 있어 서로 짝을 이룬 독특한 분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큰돌문화 학자인 하이네 겔드런(R. Heine-Geldern)에 따르면 큰돌문화의 한 형태인 디소릿드 양식으로 이해되어 다른 지역의 이러한 예와 비교되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