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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923
한자 李宗謙
영어음역 Lee Jonggyeom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영천
대표관직 함흥소윤

[정의]

조선 전기 용인으로 낙향한 문신.

[개설]

이종겸세종 대 문신으로 활동하다가 세조의 즉위에 따른 혼란과 화를 면하기 위해 형과 함께 문종 때 낙향하였다. 조부인 이석지(李釋之)가 은거했던 용인현 남곡(南谷)으로 내려가 효우당(孝友堂)을 짓고 산수를 읊는 등 한가로운 생활을 하였다.

[가계]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암곡(岩谷).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는 고려 말기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있다가 물러나 용인현에 은거하며 조선 건국의 혼란기를 벗어났던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이안직(李安直)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판의금(判義禁) 유호(柳滸)의 딸이다. 형은 대사간(大司諫) 이종검(李宗儉)이다.

[활동사항]

이종겸은 1442년(세종 24)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임명되었으며, 장씨(張氏)란 사람이 그 아들 양맹규(楊孟糾)가 불효(不孝)하다고 고발한 사건을 조사하였다. 또한 그 이듬해에는 특별한 은전(恩典)으로 가자(加資)하였으면, 그 뒤에 비록 임기가 찼을지라도 가자를 받지 못하는 것이 상례인데 재차 가자를 받은 이근전(李根全)의 예를 들어 거듭 가자를 받는 부당성과 제사(祭祀)에서 향과 축을 맡은 조극관(趙克寬)이 향을 준비하지 못한 것을 처벌하도록 건의하였다.

1447년(세종 29) 인순부소윤(仁順府少尹)으로 있으면서 구황경차관(救荒敬差官)이 되어 황해도로 갔다. 이는 도내(道內)에 굶주린 백성 중 진제(賑濟)를 받은 사람이 많지만, 그 수가 더욱 늘어나 궁벽한 시골까지 시기에 맞춰 시찰하기가 어려우니 관리를 보내달라는 황해도감사의 청에 따른 것이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제주선위별감(濟州宣慰別監)으로 있으면서, 제주에서 왜인(倭人)이 왜선(倭船) 5척의 무리를 이루어 횡행(橫行)하는 것을 시기에 맞추어 붙잡았다. 이어 함흥소윤(咸興少尹)이 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조부인 이석지의 묘소와 함께 있다. 경기도 용인시 내사면 주북리남곡재(南谷齋)가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5.13 성씨 수정 '문화유씨'를 '문화류씨'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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