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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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州吳氏 |
영어음역 | Haeju Ossi |
영어의미역 | Haeju 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처인구 모현읍 오산리|백암면 박곡리|원삼면 죽릉리|목신리|학일리 |
집필자 | 정양화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릉리|목신리|학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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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릉리|목신리|학일리 |
입향시기/연도 | 1300년대 |
성씨시조 | 오인유(吳仁裕) |
입향시조 | 오희보(吳希保) |
[정의]
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희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본래 중국 송나라 때 이름 높았던 대학사로, 984년(성종 3)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입향경위]
고려 말 대호군을 지낸 오희보(吳希保)가 말년에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릉리·학일리 일대에 정착하여 세거하게 되었다. 오희보의 5세손 오희문(吳希文)이 이석형의 현손인 이정수(李廷秀)의 사위가 되어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이거한 이후 대대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고려조의 인물로는 여진족을 토벌한 오연총(吳延寵)과 오한경(吳漢卿), 오광정(吳光廷)이 이름났다. 조선시대에는 『쇄미록』의 저자인 오희문이 유명하고 아들인 오윤겸(吳允謙)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조카 오달제(吳達濟)는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 끌려가 죽었으며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오윤겸의 손자 오도일(吳道一)은 숙종 때 대제학에 오르고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현손 오명항(吳命恒)은 우의정을 지냈다.
형조판서를 지낸 오두인(吳斗寅), 아들 오태주(吳泰周), 손자 오원(吳瑗)이 대대로 이름을 떨쳤고, 증손 오재순(吳載純)도 학문으로 당대에 이름이 났다. 근대 인물로는 조선 말기 개화파 오경석(吳慶錫)과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아들 오세창(吳世昌)이 유명하다.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는 남한에 있는 해주오씨의 관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원삼면에서도 대성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유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와 죽릉리, 목신리에 묘역이 있다.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묘역이 있으며 해주오씨 시조를 비롯하여 역대 조상으로 모신 묘단과 재실이 있다. 오달제의 묘 아래에 대낭장비가 있는데 그의 묘에 평소에 사용했던 주머니와 혁대를 묻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