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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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양주목 광석면[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던 다리. 가업교라는 명칭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등장한다. 가업교는 가래나무[추자목(楸子木)]가 많은 마을에서 그 나무를 이용해 만든 다리로 추측된다. 조선 후기에 가래비 혹은 가라비(加羅非)는 백석면[현 백석읍 가업리] 쪽에도 있었지만 『1872년 지방지도』 등에 등장하는 가라비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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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경기도 양주를 비롯한 36개 읍의 세금 징수 대상을 기록한 자료. 「경기 각읍 신정 사례(京畿各邑新定事例)」는 1894년 10월 승총(陞總)[세금 징수 대상에서 빠진 토지 내역을 조사해 장부에 등록하는 일]에 따라 새롭게 정해진 경기도 각 읍(邑)·진(鎭)의 세금 징수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규15234]. 필사본. 2책. 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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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에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1390년(공양왕 2) 7월 서운관에서 송도 개경의 지적을 쉬게 하고 국운을 일으키기 위해 『도선비기(道詵秘記)』를 따라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상서하였고, 한양 궁궐 수리 등 관련 조치들이 행하여졌다. 그중 한양부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재편이 이루어졌다. 도성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 해당하였던 양주 일대는 경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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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의 선정비군. 경신리 선정비군(庚申里善政碑群)은 양주목 및 적성현(積城縣) 백성들이 관찰사를 지낸 김기만(金箕晩)과 적성현감을 지낸 오경연(吳慶延)·현제승(玄濟昇)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의 선정비를 말한다. 김기만 불망비는 1849년(헌종 15)에, 오경연 불망비는 1850년(철종 1)에, 현제승 불망비는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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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기도 양주시와 관련하여 양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898년 부터이다. 양주와 함께 이미 견주(見州)도 이때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 시대의 양주를 편의상 건국 후 정종(靖宗) 대까지를 초기, 문종(文宗) 대부터 원종(元宗) 대까지를 중기, 충렬왕(忠烈王) 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후기로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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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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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호는 박사. 호가 박사이므로 사람들로부터 김박사라고 불렸다. 김연성(金演性)[187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으며, 일찍부터 학문에 재능이 있어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하였다. 1907년 9월 의병을 일으켜 동년 12월까지 부하 30~40명을 이끌고 경기도 양주·적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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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진묵(金溱默)은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김진묵은 일제가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고 이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고자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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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매곡리 맹골마을에 있는 미술 조각 체험장. 맹골마을은 주민 50% 이상이 수원 백씨이며 마을 주변으로 감악산과 신암저수지, 효촌저수지 등이 위치하고 있어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청정 지역이다. 맹골마을 내에는 인삼 공장과 된장 공장, 화훼 단지, 목장, 유기농 채소 재배지가 있고, 접경 지역 특화 마을 사업에 따라 종합 체험관, 미술 조각 체험장, 발효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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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입암리에 있는 장애인 생활 시설. 보아스 사랑의 집은 가정과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소외된 장애인을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사회 적응 교육과 자립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을 실시해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장애인 생활 시설이다. 보아스 사랑의 집은 「사회복지사업법」의 규정에 의해 설립된 사회·복지 시설로서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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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서울의 북편에 위치한 경기도 양주시는 광주산맥의 끝단으로서 남쪽으로 서울과 양주시·의정부시를 가르는 도봉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높고 낮은 산들이 고루 흩어져 있다. 한마디로 양주시는 거의 대부분이 산지 지형이며 여러 산들 사이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양주시 중심가이다. 임진강을 끼고 있는 파주시 적성면과 연천군 전곡읍을 북쪽에 접하고 있으면서, 양주시의 최북단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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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산. 사리산(舍利山)은 산줄기가 마치 닭의 발처럼 세 줄기로 나뉘어 있어 원래 계족산(鷄足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이 산에 있는 절의 부도 안에서 사리가 나왔으며 그것을 계기로 이름을 사리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양주시 남면 사람들도 계족산보다는 사리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태종실록(太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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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에서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로 넘어가는 고개. 설마치고개는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신라의 삼국 통일을 지원하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리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혹은 근처에 제단이 있어 설마고개[薛馬峙]라 했다고도 한다. 어룡고개 혹은 어영고개라고도 불리었는데, 임금님이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설마치고개는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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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중 양주도호부[지금의 경기도 양주시]에 해당하는 부분. 『세종실록지리지』는 1424년(세종 6) 편찬에 착수하여 1454년(단종 2) 총 8책 7권[권 149~155] 분량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중 「세종실록지리지 양주도호부」 부분은 제1책 권149에 수록되어 있다. 양주도호부는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시·양주시·의정부시·동두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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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군사 조직. 중앙군과 지방군의 일원화를 위한 진관 체제가 성립되기 전,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던 영(營)·진(鎭)을 내륙에 있는 주현(州縣)에도 설치하여 방어의 허술함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1455년(세조 1) 전국의 각 도를 몇 개의 군익도로 나누고 각 군익도를 다시 중·좌·우의 3익(翼)으로 나누었다.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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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관 체제에 따라 경기도 양주 지역에 편성된 군사 체제. 1457년(세조 3) 세조는 군익도(軍翼道) 체제를 강화하여 진관 체제로 바꾸었는데, 이때 경기도에 양주진을 비롯한 수원진, 광주진, 강화진, 개성진 등 총 5개 진을 설치하여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군사 조직으로 활용하였다. 당시 계유정란에 의해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많은 반란의 위기에 처해 있었으므로 군사 조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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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명은 왕영종(王榮鍾)이며, 경기도 연천 출신이다. 왕회종(王會鍾)은 1905년 일제의 책동에 의하여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며 1906년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김진묵(金溱默)을 부장으로 50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적군과 유격전을 전개해 북으로 진격하여 혜산진(惠山鎭)까지 올라갔다. 1907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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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윤인순(尹仁淳)[188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인순은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일제의 책동으로 군대 해산이 강행되자 독자적으로 의병 부대를 일으켜 의병장으로서 양주 석치에서 적과 접전하였고, 그 후 파주·적성·포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말 경기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점차 13도 연합 의병 부대로 확대되어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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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과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려 및 조선 시대의 현. 임진강을 끼고 있어 교통상, 군사상의 요지였던 경기도 양주 지역에는 삼국 시대 때부터 토탄성(吐呑城)·아미성(峨嵋城)·육계성(六溪城)·수철성(水鐵城) 등의 많은 성이 있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요지로 인식되었고, 고려 시대에 들어 성이 많다 하여 ‘적성(積城)’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주로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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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범(重凡), 호는 의암(毅庵). 양촌공파(陽村公派) 21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의병 정인태(鄭寅泰)이며, 아버지는 정두환(鄭斗煥)이다. 어머니는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정용대(鄭用大)[1882~1910]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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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있는 충신 조견(趙狷)과 남을진(南乙珍)의 조선 후기 사당. 정절사(旌節祠)는 고려 말의 충신인 조견[1351~1425]과 남을진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조견은 1392년(태조 1) 상장군으로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는 데 앞장서 조선이 개국된 후 개국 공신에 책록되었다. 남을진은 조선이 개국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적성(積城) 감악산(紺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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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조인환(曺仁煥)은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농민을 규합하여 의병 부대를 편성한 뒤 경기도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에는 권준(權俊)·왕회종(王會鍾)·연기우(延基羽) 등 많은 의병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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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형(季馨), 호는 왕산(旺山).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형은 허훈(許薰)[1990년 애국장 추서]·허신(許藎)·허겸(許兼)[1991년 애국장 추서]이다. 자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허학·허영·허준·허국이다. 허위(許蔿)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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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순일(黃順一)[1865~?]은 포군 부장(砲軍部長)을 지냈다. 1904~1905년경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로 이사하였으며, 1907년 9월 황재호(黃在浩)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양주를 비롯하여 적성, 포천, 가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양주 출신의 의병 홍희영(洪喜永)을 포함하여 40여 명의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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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재호(黃在浩)[1872~?]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복무하던 중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적성군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권득수(權得洙)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얼마 후 권득수 부대를 흡수 통합하여 양주·파주·가평·영평 일대에서 양주 출신인 추삼만(秋三萬)·전순만(全順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