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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501
한자 弘竹一里 - 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1리
집필자 서영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매년 음력 10월 1일 - 홍죽1리 안골 산제 거행
의례 장소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1리 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0월 1일

[정의]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1리 안골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홍죽1리 안골 산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안골마을 동쪽의 은봉산에서 마을에 해가 없고 사람들이 무사태평하게 잘 지내기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안골마을에서는 음력 7월 1일에 마마 신에게 홍죽1리 안골 들제사를 지내고, 10월에 다시 마을 사람 모두의 평안과 무사고를 은봉산 산신에게 빈다. 산 밑에 살고 있어서 예로부터 산신에게 치성을 드려야 아무 탈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믿어온 것이다.

[연원 및 변천]

산신제를 지내는 양주 지역의 여러 마을과 마찬가지로 홍죽1리 안골 산제는 마을을 수호하는 산신에게 한 해의 풍년과 무사고, 마을 주민의 무병과 건강·장수를 비는 의식이다. 이와 같은 산신제가 언제 생겼는지 그 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랜 옛날부터 대물림으로 이어 오는 사이 주민 서로의 화합을 다지고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동제(洞祭)로 존속해 온 것만은 분명하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당이나 기타 산제를 지내기 위한 건물은 없다. 다만 은봉산 6부 능선에 산제를 지내던 자리가 있다. 이 자리를 산제 터라 부르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산신을 모셨다. 여기에 있는 바위와 소나무 몇 그루들을 산신을 위하는 대상물로 삼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소나무를 고사나무라고 하여 매우 신성시하였다.

[절차]

홍죽1리 안골 산제의 절차와 방식은 홍죽1리 안골마을 들제사와 동일하다. 제를 지내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관 1명, 축관 1명, 화주 1명, 선화주 1명은 산제 전날 선출한다. 예전에는 제관으로 선출되면 거부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랐으나 이제는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절차가 까다롭고 힘이 들기 때문이다.

산제를 지내는 절차와 제물도 들제사와 동일하다. 다만 들제사에 쓰는 황계[수탉]는 산제사에서는 쓰지 않는다. 제관과 화주는 모두 4명이며 제사 전날 화주와 제관, 축관을 선출하고 나서 화주는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은 소머리 한 개, 백설기 한 말, 통북어 10마리, 메 한 솥[2되 정도], 배, 사과, 곶감, 포, 밤, 대추, 쇠고기 적 한 근, 조라술 등이다. 조라술은 산제사가 있는 날 아침에 산제를 지낼 곳에 천막을 치고 화주와 제관 일행이 함께 담근다. 이때 선화주는 소머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제물을 의정부장에 나가 준비한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직접 소를 잡아 소머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소머리만을 따로 구입하여 사용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저녁을 먹지 않고 어두워질 무렵까지 기다렸다가 여럿이 지게에 제물을 나누어지고 올라가 제사를 지낸다. 예전부터 전해 오는 놋그릇 제기를 마을 회관에서 꺼내어 함께 지고 나가 제물을 차리는데, 진설을 끝내면 먼저 제관이 술 한 잔을 따른 다음 재배를 한다. 이어 독축을 하고 다시 제관이 절을 한다. 재배가 끝나면 소지를 하는데, 제관 소지를 먼저 올린 다음 대동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는 먼저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무 사고 없이 해 달라고 기원한다. 산제의 제의 순서는 들제사와 거의 같으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소지를 올리는 것이다.

산제가 끝나면 술과 소머리 서너 점을 헌식하고 제관 각자가 음복을 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제관 일행은 화주 집에서 술을 한 잔씩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함께 음복을 하면서 결산을 본다. 이 산신제에 드는 비용은 예전에는 걸립으로 충당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근래까지는 마을 기금을 사용하였다.

[축문]

홍죽1리 안골마을에서 마마 신 들제사와 산신제가 있지만 산신제의 축문은 다른 지역의 축문과 거의 동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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