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35 |
---|---|
한자 | 興海裵氏 |
영어의미역 | Heunghae Ba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복영 |
세거지 | 안동시 예안면 도목리 |
---|---|
집성촌 | 안동시 예안면 도목리 |
입향시기/연도 | 13세기 초 |
성씨시조 | 배경분(裵景分) |
입향시조 | 배전(裵詮) |
[정의]
배경분을 시조로 하고 배상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지 안동의 흥해배씨는 입향조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1351~1413)의 아들 4형제가 모두 출사한 이래로 6백여 년을 세거해 온 가문이다.
[연원]
흥해배씨는 고려 때 검교장군을 지낸 시조 배경분(裵景分)의 6세손 배전이 충혜왕 때 호군을 거쳐 군부판서로 조적(曹蹟)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에 책록되고 흥해군(興海君)에 봉해진 후 후손들이 배경분을 시조로 흥해를 본관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입향경위]
고려 충혜왕 때 사람 배전이 일직현에 살던 손홍량(孫洪亮)의 사위가 되어 안동에 출입하였다. 배전의 셋째 아들 배상지는 안동 사람 권희정(權希正)의 사위였는데, 고려 말에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안동 금계리로 옮겨 살았다. 배상지의 아우 배상공(裵尙恭)은 친구 류종혜(柳從惠)를 따라 하회촌에 정착하였다.
배상지의 네 아들 중 장자 배권(裵權)은 지평, 차자 배환(裵桓)은 문과에 올라 참의, 감사를 지냈고, 삼자 배남(裵楠), 사자 배강(裵杠)도 각각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을 지냈다. 배권의 증손 배이순(裵以純)이 금계를 떠나 봉화 호평으로 이거하였고 배이순의 손자 배천석(裵天錫, 1523~1573)이 1546년에 다시 선대의 고향 금계로 돌아왔다가 1558년 도목촌으로 이사하면서 흥해배씨의 도목시대가 시작되었다.
배천석의 아들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1534~1588)은 156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배삼익의 아들 금역당(琴易堂) 배용길(裵龍吉, 1556~1609)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종제 배인길(裵寅吉)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용궁전투에 참여하였고 배인길은 전사하였다.
[현황]
안동의 흥해배씨는 예안면 도목리 종가를 중심으로 세거해 왔으나 1971년 안동댐 건설로 세거지가 수몰되어 안동 시내, 예안면, 임하면 등지로 흩어졌으며 종택과 사당은 송천동으로 옮겼다.
[관련유적]
와룡면 서지리에 배상지의 묘가 있는데 묘는 하방상원(下方上圓)의 봉분과 1414년에 세운 비석이 그대로 보존된 조선 초기의 전형적 분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귀한 유적이다. 배환이 지은 정자 낙암정(洛巖亭)이 남후면 단호리에 있고, 임연재 종택이 송천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