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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29
한자 權暐
영어음역 Gwon Wi
이칭/별칭 숙회(叔晦),옥봉(玉峰),옥산야옹(玉山野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52년(명종 7)연표보기
몰년 1630년(인조 4)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예조좌랑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회(叔晦), 호는 옥봉(玉峯)·옥산야옹(玉山野翁). 부호군 권곤(權琨)의 현손이며 성균생원 권사빈(權士彬)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현감 권의(權檥), 아버지는 생원 권심행(權審行), 어머니는 절충장군 강희철(康希哲)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림(安霖)의 딸이다.

[활동사항]

권위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서 태어났다. 조목(趙穆), 김성일(金誠一), 김언기(金彦璣)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권우(權宇), 김해(金垓) 등과 교유하였다. 아버지인 권심행이 억울하게 변고를 당하여 벼슬길에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다가 어머니를 위해 뒤늦게 과거에 응시하여 50세인 1601년(선조 34) 문과에 급제하였다. 나이가 많았으므로 바로 전적(典籍)에 임명되었다가 겨울에 공조좌랑에 제수되었다. 이후 해미현감, 형조좌랑·호조좌랑·예조좌랑을 거쳐 1609년에는 수성찰방(輸城察訪)에 임명되었으나 질병으로 사임하였다.

광해군대 초반에 벼슬을 하지 않다가 1616년(광해군 8) 동도교수(東都敎授, 동도는 지금의 경주)에 임명되자 벼슬이 하찮다고 여기지 않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언젠가 제자들에게 “선비란 자기 본분에 맞는 공부가 있으니 과거는 단지 말사(末事)에 불과할 뿐이며 한갓 외물에 이끌리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목판본 『옥봉집(玉峰集)』 4권 2책이 있다. 도계서원(道溪書院)에 보관되어 온 필사본의 초고 교정본인 『옥봉선조유고(玉峯先朝遺稿)』가 전한다. 『동경일록(東京日錄)』은 권위가 경주에 머물면서 가끔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느낀 감회를 기록한 것이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 마감(磨鑑)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87년(숙종 13) 권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림의 결의에 따라 도계정사(道溪精舍)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냈다. 그 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도계정사는 훼철되었다가 1928년 권위가 거주하던 만대헌의 옛 터를 복원하여 도계서원으로 승격시켰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정** 상단에 이미지 石窩文集卷之一은 權暐공의 시문집이 아니고 權禕공의시문집으로 오류 이오니 玉峰集으로 수정하여 주십시오.
  • 답변
  •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주신 해당 사진은 삭제하였습니다.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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