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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301
한자 金彦璣
영어음역 Gim Eongi
이칭/별칭 중온(仲瑥),유일재(惟一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520년연표보기
몰년 1588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정의]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온(仲溫), 호는 유일재(惟一齋). 아버지는 진사 김주(金籌), 어머니는 죽계안씨(竹溪安氏)로 안처정(安處貞)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언기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서 태어났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백담(白潭) 구봉령(具鳳齡)과 함께 10년을 기한으로 하고 청량산(淸凉山)에 들어가 독서를 하였는데 집안의 유고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구봉령보다 먼저 산을 내려오게 되었다. 9년 독서 뒤 하산할 때 눈에 들어오는 산비탈의 초목들이 모두 자신이 읽은 문자들로 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학문적 열정에 비하여 사회적 성취는 매우 늦었던 듯 누차의 응시에도 불구하고 48세에야 생원이 되었다.

이후 가야(佳野, 현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서 정착하여 인근의 김부필(金富弼)의 여러 종형제, 구봉령, 권춘란(權春蘭), 권호문(權好文), 김팔원(金八元)이황의 문도들과 교유하고 강학하였다. 1561년(명종 16) 가야에 서당을 짓고 수십 명의 문도들을 양성하였는데 그 중 남치리(南致利), 정사성(鄭士誠) 같은 이들은 김언기에게 수학한 뒤에 이황 문하에서 수학하여 저명한 학자가 되었다.

김언기는 성품이 돈후하며 진실하였으며 명리에 뜻을 두지 않았다. 몸가짐을 항상 신중하게 하였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여 뜻을 구하였는데 남긴 자취와 의론(議論)에 대한 기록은 많았다고 하나 임진왜란 중 소실되어 현재까지 거의 남은 것이 없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유일재선생실기(惟一齋先生實記)』 2권이 있다. 문집은 서문이 없고, 권1에는 「제모재(題茅齋)」를 비롯한 시(詩) 6제와 부 1편, 서(書) 2편, 지(識) 1편 등이 실려 있다. 「문인록(門人錄)」에는 192명의 문도들의 명호, 관향, 거주지, 생년 등이 실려 있어 평생에 걸친 강학 활동의 성과를 알려 주고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와룡산(臥龍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용계서원(龍溪書院)과 옥계서원(玉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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