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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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槐臺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성봉현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동에 있었던 온양행궁의 영괴대에 관하여 기록한 조선 후기 고문헌.
[개설]
영괴대(靈槐臺)는 1760년(영조 36) 7월에 온양행궁에 와서 머물던 장헌세자(莊獻世子)[1735~1762, 사도세자]가 활을 쏘던 자리에 정조 때 만들어진 토대이다. 장헌세자는 온행 당시에 사람을 시켜 느티나무 세 그루를 품(品) 자 형태로 심게 하였다. 30년 뒤인 1795년(정조 19), 장헌세자가 회갑이 되는 해에 온양군수 변위진(卞緯鎭)이 주변을 정비하여 대(臺)를 만들고, 충청도관찰사인 이형원(李亨元)이 ‘영괴대’로 이름 지어 정조에게 보고하였다. 정조는 기뻐하며 ‘영괴대’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직접 ‘靈槐臺(영괴대)’라 글씨를 써 주고 ‘어제영괴대명(御製靈槐臺銘)’을 지은 뒤 이를 새겨 비를 세우게 하였다.
[제작 발급 경위]
『영괴대기』는 장헌세자가 온양행궁에서 활을 쏘던 자리에 1795년에 영괴대를 조성하고 영괴대비를 세운 뒤 탁본(拓本)하여 장첩하고 충청도관찰사 이형원이 그 과정을 기록하고 기문(記文)을 지어 편찬하였다.
[형태]
『영괴대기』는 5절 9면의 1첩이며, 크기는 가로 25.6㎝, 세로 39.4㎝이다.
[구성/내용]
『영괴대기』의 권두에는 온양별궁(溫陽別宮)의 도본(圖本) 2면과 온양별궁 도본 가운데 영괴대가 있는 부분을 확대한 도본(圖本) 2면을 채색(彩色)으로 그려 수록하였다. 채색도에 이어 영괴대비(靈槐臺碑)의 비문을 탁본하여 1면에 7행 20자로 잘라 5면으로 장첩하였다.
권말에 "숭정삼을묘맹하하완 관찰사신이형원근지(崇禎三乙卯孟夏下浣觀察使臣李亨元謹識)"라고 기록하여 1795년 4월 하순에 충청도관찰사였던 이형원이 작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필사되어 있는 기문은 영괴대 조성 경위를 기록한 내용이다. 1760년에 사도세자가 습창을 치료하기 위해 온양행궁에 머무를 때 뒤뜰에서 활을 쏘는데, 그늘이 없어 느티나무 세 그루를 품(品) 자 형태로 심게 하였는데, 그 후 30년이 지나 무성하게 자랐다. 1795년에 온양군수 변위진이 느티나무 둘레에 토대를 만들었으며, 충청감사 이형원이 그 토대를 ‘영괴대’라 이름하였고 정조의 명으로 비를 세웠음을 기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대로 1459[온천동 242-10]에 있는 영괴대는 융릉, 용주사와 더불어 극히 적게 남은 사도세자[장헌세자] 관련 유적이자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아산의 역사·문화 유적이다. 『영괴대기』는 영괴대의 조성과 영괴대비 건립 과정 등을 기록한 중요한 유물이다. 『영괴대기』의 도본에는 온양별궁과 부속 건물이 화려하면서도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 조선 후기 온양행궁의 규모와 배치 형태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