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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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居姓氏 |
영어공식명칭 | Local Family Names of Residents |
이칭/별칭 | 성씨,본관,토성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제연 |
[정의]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같은 본관과 성을 가지고 대대로 살아온 성씨.
[개설]
특정 지역의 세거성씨(世居姓氏)는 어떤 가문이나 인물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세거성씨는 입향조(入鄕祖)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다. 촌락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혈연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전통 성씨는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등 조선시대 관찬 기록을 통해 시대별 변화를 참고할 수 있다. 세거성씨는 지금의 아산시를 구성하는 온양현, 신창현, 아산현 등 세 군현의 전통 성씨와 생원·진사를 뽑던 소과(小科) 입격자(入格者) 배출 성씨를 바탕으로 알아볼 수 있다. 아산 지역에는 온양정씨(溫陽鄭氏), 온양방씨(溫陽方氏), 해평윤씨(海平尹氏), 신창맹씨(新昌孟氏), 신창표씨(新昌表氏), 아산이씨(牙山李氏), 신창조씨(新昌趙氏), 예안이씨(禮安李氏), 덕수이씨(德水李氏), 아산장씨(牙山蔣氏), 김녕김씨(金寧金氏), 언양김씨(彦陽金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전주이씨(全州李氏), 남양홍씨(南陽洪氏) 등의 세거성씨가 있다.
[성씨의 보편화]
우리나라에서 성씨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에 들어서부터로 보고 있다. 고려 통일 이후 각 지방에서 세력을 형성한 일단의 귀족층과 토착적인 유력층이 지역을 장악하고 다스리는 체제가 마련되면서 고려 태조 왕건은 940년(고려 태조 23) 무렵 전국 군현을 개편하고 토성(土姓)을 분정(分定)하였다. 여기에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성씨, 고려시대에 나라에서 내려준 성씨, 즉 사성(賜姓)이 있었다. 일부는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이들로 인한 중국 성씨도 존재한다. 고려에서의 사성은 상류층에 해당하지만, 점차 군현의 양민들에게도 성씨가 보급되었고, 성씨는 계속해서 생성되고 분화하여 갔다.
조선 건국 후에는 본현(本縣)의 성씨뿐만 아니라 폐현(廢縣), 촌(村), 향(鄕), 소(所), 부곡(部曲)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가 다수 존재하였다. 그러나 1500년대 말부터 같은 자를 쓰는 성씨가 대성(大姓)[후손이 번성한 성씨]의 본관으로 바꾸며 본관지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성씨가 없던 일반 백성들은 성을 취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개항기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인구가 성과 이름의 결합인 성명을 갖게 되었다.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아산 지역의 전통 성씨]
선사시대 이후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는 발굴조사와 각종 문화재를 통해 남아 있지만, 역사적 기록 속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부터라 할 수 있다. 특히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등 관찬 기록을 통해 시대별 성씨의 변화를 참고할 수 있다. 지금의 아산시를 구성하는 조선시대 세 군현의 성씨를 각각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온양현의 토성은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정(鄭)·이(李)·방(方)·강(康) 등 4개 성씨가 등재되었고, 촌성(村姓)으로 윤(尹)이 있었다. 이것은 50여 년 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도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여러 성씨 중 온양정씨, 온양방씨가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씨와 강씨의 경우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촌성은 촌락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인데, 어느 지역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인물 관련 기록으로 효자 맹희도(孟希道)가 있는데, 맹희도는 「신창현 인물조」에 표기되어 있으며 실제로 신창현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인 『온양군읍지』의 「성씨조」에는 앞선 기록의 성씨인 정(鄭), 이(李), 방(方), 강(康), 윤(尹)이 그대로 등재되고 맹(孟), 조(趙), 남(南), 유(兪) 등의 성씨가 추가되었다.
신창현의 토성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표(表)·맹(孟)·방(方)·조(趙) 등 4개 성씨가 등재되었고, 촌성은 노(盧)가 있었다. 이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다만 역성(驛姓)으로 이(李)가 추가되었다. 이 가운데 토성 4개 성씨는 모두 신창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신창맹씨는 맹희도·맹사성(孟思誠) 부자가 상징적인 인물로, 같은 사료 「인물조」에는 가장 먼저 맹희도·맹사성 부자 및 개국공신 조영규(趙英珪)가 등재되었고, 표연말(表沿沫)·표빙(表憑) 부자가 있다. 신창맹씨는 시조의 이름과 묘가 전해지지 않던 중 1870년(고종 7) 12월 충청도 온양군 읍내면 법곡동[현재 아산시 법곡동]에 ‘시조맹공신창백(始祖孟公新昌伯)’의 단을 설립하면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인 『여지도서』의 「성씨조」에는 표(表), 맹(孟), 방(方), 조(趙), 노(盧), 이(李)의 순서로 등재되었다.
아산현의 성씨는 『세종실록지리지』에 토성으로 이(李)·전(全)·유(兪)·현(玄)·신(申) 등 5개 성씨와 망성(亡姓)으로 강(康)·백(白), 서울에서 온 망래성(亡來姓)으로 임(林)·장(蔣)·신(申)·이(李)·강(康)·현(玄)·유(兪) 등 6개 성씨, 없어진 덕천향(德泉鄕)의 유(兪)·이(李)·안(安)·강(康) 등 4개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고을 규모가 컸던 만큼 많은 성씨가 확인된다. 고려시대 대몽 항쟁 시기 온수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온양의 향리 ‘현려(玄呂)’라는 인물은 온양현씨(溫陽玄氏)이었을 것이지만, 아산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본현 성씨로 이(李), 강(康), 백(白), 전(全), 유(兪), 신(申), 현(玄)과 촌성으로 장(蔣), 신(申), 이(李), 강(康), 현(玄), 유(兪), 윤(尹) 그리고 개경(開京)의 임(林), 덕천(德泉)의 유(兪)·이(李)·안(安)·강(康)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망성이었던 강씨·백씨가 본현 성씨에 포함되었고, 현씨·신씨의 순위가 바뀌었다. 촌성에 윤씨가 포함되고 개경의 임씨와 덕천의 성씨는 똑같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인 『여지도서』의 「성씨조」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일하다.
[아산 지역의 생원·진사 입격자 배출 성씨]
조선시대 사마시(司馬試)[소과] 급제자 중 아산 지역 3개 군현을 거주지로 하고 있는 인물을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성씨가 등장한다. 생원·진사에 입격자를 배출하는 것은 지방사회에서 가문의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였으며, 이들 성씨가 당대에 아산 지역 내 사족(士族) 활동을 주도하였을 것이다.
소과 입격자 2인 이상 배출 성씨[괄호는 입격자 수]는 전주이씨[17], 기계유씨(杞溪兪氏)[17], 창녕성씨(昌寧成氏)[15], 양주조씨(楊州趙氏)[13], 예안이씨[12], 진주강씨(晉州姜氏)[11], 파평윤씨(坡平尹氏)[10], 남양홍씨[8], 김해김씨[7], 전의이씨(全義李氏)[7], 온양정씨[7], 의령남씨(宜寧南氏)[7], 풍천임씨(豊川任氏)[6], 여흥민씨(驪興閔氏)[6], 연안이씨(延安李氏)[6], 평산신씨(平山申氏)[6], 덕수이씨[5], 경주이씨(慶州李氏)[4], 안동권씨(安東權氏)[4], 청주한씨(淸州韓氏)[4], 한양조씨(漢陽趙氏)[4], 경주김씨(慶州金氏)[3], 광주이씨(廣州李氏)[3], 성주현씨(星州玄氏)[3], 풍산홍씨(豊山洪氏)[3], 한산이씨(韓山李氏)[3], 함양박씨(咸陽朴氏)[3], 해평윤씨[3], 경주이씨(慶州李氏)[2], 문화유씨(文化柳氏)[2], 밀양박씨(密陽朴氏)[2], 반남박씨(潘南朴氏)[2], 아산이씨[2], 안동김씨(安東金氏)[2], 용인이씨(龍仁李氏)[3], 평강채씨(平康蔡氏)[2], 평해손씨(平海孫氏)[2], 풍양조씨(豊壤趙氏)[2] 등이다.
1인 배출 성씨에는 금산임씨(錦山林氏), 김제김씨(金堤金氏), 강릉김씨(江陵金氏), 강화최씨(江華崔氏), 경주김씨, 동래정씨(東萊鄭氏), 고령박씨(高靈朴氏), 고령신씨(高靈申氏), 광산김씨(光山金氏), 보성선씨(寶城宣氏), 상주박씨(尙州朴氏), 서원한씨(西原韓氏), 선산김씨(善山金氏), 성주이씨(星州李氏), 순천김씨(順天金氏), 신녕윤씨(新寧尹氏), 아산박씨(牙山朴氏), 아산한씨(牙山韓氏), 양천허씨(陽川許氏), 여미곽씨(餘美郭氏), 여흥이씨(驪興李氏), 연산서씨(連山徐氏), 연성김씨(燕城金氏), 연일정씨(延日鄭氏), 우봉이씨(牛峰李氏), 울산안씨(蔚山安氏), 인동장씨(仁同張氏), 전주최씨(全州崔氏), 제주고씨(濟州髙氏), 창녕조씨(昌寧曺氏), 창원황씨(昌原黃氏), 천안전씨(天安全氏), 천안이씨(天安李氏), 초계변씨(草溪卞氏), 평산한씨(平山韓氏), 평산이씨(平山李氏), 평산박씨(平山朴氏), 평창이씨(平昌李氏), 평택임씨(平澤林氏), 풍산심씨(豊山沈氏), 하동정씨(河東鄭氏), 합천이씨(陜川李氏), 현풍곽씨(玄風郭氏), 회덕황씨(懷德黃氏)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