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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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毛山聖堂 |
영어공식명칭 | Mosan Cathedral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모산로171번길 1-9[공수리 99-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성준 |
설립 시기/일시 | 1985년 8월 - 모산성당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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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88년 3월 - 모산성당 이전 |
최초 설립지 | 모산성당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북수로25번길 22[공수리 286-25] |
현 소재지 | 모산성당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모산로171번길 1-9[공수리 99-1] |
성격 | 성당 |
설립자 | 경갑룡 주교[천주교 대전교구장] |
전화 | 041-548-1417 |
홈페이지 | 모산성당(https://lovecatholic.community/churches/465/모산성당)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개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대에 내포 인근의 금북정맥 산줄기에 여러 개의 교우촌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태화산 자락인 현재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출리[배방읍 호서로]에 있던 남골 교우촌이 1890년대 이후 남골공소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생긴 공수리공소가 해방 후 모산공소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공주성당 소속이었다가, 1939년에 천안본당 소속으로, 1948년부터는 온양성당 소속이 되었다. 1957년 공수리에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77년부터 새 성전 부지를 매입하는 등 본당 승격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여 1985년에 탕정면 지역 3개 공소를 관할하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그 직후에 배방면의 중심부에 토지를 매입하고, 1988년에 현재의 새 성전을 짓고 이전하였다. 배방면이 주거, 산업, 교통 등 여러 면으로 개발되면서 인구가 급증하여 신자 수도 급증하자 2008년 1월 배방성당을 북수리에 신설하여 분리하였으며, 2010년에는 천안아산역 신도시에 장재성당을 신설하여 분리하였다.
[설립 목적]
모산성당은 박해 시대 교우촌으로부터 이어진 내포 천주교회 순교 신앙의 전통을 이어받아 배방[모산] 지역에 천주교 신앙을 확산해 나가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1917년에 공수리공소로 출발한 모산공소는 처음엔 공주본당 소속이었다가, 1939년부터 안성본당에서 분리된 천안본당 소속이 되었으며, 1948년부터는 공세리본당에서 분리된 온양본당의 13개 공소 중 하나에 속하게 되었다. 1945년 광복 후 갈월공소가 생겼고, ‘공수리공소’를 ‘모산공소’로 부르게 되었는데, 6·25전쟁으로 잠시 폐쇄되었던 모산공소는 1951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이 당시 모산공소는 강당 건물도 없이 대개 공소회장의 집에서 예절을 드리며 1년에 봄·가을로 열리는 판공(判功) 때에만 본당 신부가 방문하여 미사를 드렸다. 1957년 9월 배방면 공수리에서 대규모 옹기공장을 운영하던 유정재[루도비코]의 100평[331㎡] 규모의 토지 헌납[공수리 286-1번지]과 신자들의 노력 봉사로 25평[83㎡]의 강당을 신축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탕정면에 있는 갈산공소, 매곡[맹골]공소, 호산공소도 작은 규모의 공소이지만 모산공소와 함께 발전하고 있었는데, 매곡공소에는 1968년에 살트르성바오로수녀회 소속의 수도자 연 3인이 파견되어 1년간 전교 활동을 하였다.
1977년 5월 온양본당의 유재식[안셀모] 신부는 온양성당 주변의 토지 1,653㎡를 매각한 대금으로 배방면 공수리 286-26번지의 대지 1,716㎡를 매입하였다. 이후 모산공소의 신자들은 사목회장 한득용을 중심으로 굳게 뭉쳐서 본당 승격과 성전 건립을 위해 여러 가지 사업과 봉사로 기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1984년 천주교 대전교구장 경갑룡[요셉] 주교는 온양성당을 사목 방문하여 온양 용화동성당과 모산성당을 동시에 분리하는 안을 검토하였고, 1984년 11월에 모산공소에 본당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985년 8월 탕정면 지역 3개의 공소를 관할하는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모산성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은진 신부는 성당 근처의 연립주택을 임대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면서 배방면의 중심부인 공수리 99-1번지[현 배방읍 모산로171번길 1-9]의 토지를 매입하였고, 1988년 3월 새 성전과 사제관을 1차 건립하였다. 1989년 4월 성전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열었고, 이어 2층 증축 공사를 개시하여 1991년 4월에 현재의 성전을 완공하였다. 2000년에는 사제관 건물 2층에 수녀원을 증축하여 2015년까지 성체선교글라라수녀회 소속의 수도자 연 6명이 부임하여 선교 활동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67년 당시 공소회장 유덕성의 3남 유병기[예레니모]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70년 7월 갈산공소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81년 5월 매곡공소 강당을 신축하였고, 1997년 갈산공소 강당을 증축하였다. 지역 개발의 가속화와 신자 수의 급증으로 2008년 1월 배방성당을 북수리[현 배방로]에 신설하여 분리하였으며, 2010년에는 천안아산역 신도시에 장재성당을 신설하여 분리하였다. 베드로회, 대건회, 성모회, 안나회 등 신심 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 대한 선교와 봉사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모산성당은 지역 천주교 신앙의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2명의 수도자와 1명의 사제를 배출하였다. 2010년에는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아 『모산천주교회사』를 편찬하였다.
[현황]
모산성당의 역대 주임 사제로는 1대 이은진[미카엘, 1985~ ], 2대 최병석[마리아노, 1991~ ], 3대 여준구[안토니오, 1993~ ], 4대 박수범[아우구스티노, 1999~ ], 5대 박민균[요셉, 2004~ ], 6대 김수겸[프란치스코, 2009~ ], 7대 송우진[베드로, 2014~2018], 8대 남대현[마태오, 2019년 현재] 등이다. 1989년 호서대학교가 세출리에 들어서고, 1990년대부터 많은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서 삼성전자 온양공장이 입주하고, 2004년 천안아산역이 들어서는 등 지역이 개발되면서 배방면의 인구가 급증하여 2009년 배방읍으로 승격하였다. 이에 따라 모산성당의 신자 수도 계속 증가하였으며, 연령층도 젊어졌다.
1920년경 공수리공소의 교적상 신자 수는 50~60명이었는데, 1950년대 90여 명으로 늘었으며, 1960년 120여 명, 1970년대 250여 명, 1980년대 400여 명, 1999년에는 1,400여 명으로 교세가 급속히 발전하였다. 2000년대 들어 두 개의 성당이 분리되었음에도 2010년 1,300여 명의 신자가 등록되었다. 2018년 기준 교적상 신자 수는 1,700여 명이고, 주일미사 참례 신자 수는 540여 명이다.
[의의와 평가]
모산성당은 박해 시대 교우촌에서 시작된 신앙 전통을 이어받아 아산시 배방 지역에 천주교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선교하면서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왔으며, 지역 봉사활동에도 앞장서 온 유서 깊은 성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