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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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板井里 |
이칭/별칭 | 느르머리,널우물,전기통 거리,산직촌(山直村),산직말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종일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직산읍사무소의 동북쪽 약 4.5㎞ 지점에 위치한다. 국도 34호선이 중앙부를 남북으로 지난다. 동쪽으로 경부 고속 도로가 지나고 북 천안 인터체인지가 판정리에 인근한 남쪽에 있다. 백제 건국 시조 온조의 사당[온조 묘(溫祚廟)] 옛 터가 산직촌(山直村)에 남아 있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 직산현 동변면 산직리, 판정리(板井里) 지역으로 우리말로 느르머리라고 한다. ‘느르머리’는 ‘넓다’는 의미의 충청도 방언 ‘느릅다’로, ‘넓은 머리’란 뜻이다. 또한 마을 앞에 수량이 많고,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어 널판(板)으로 우물 밑과 옆을 싸서 샘을 보호했다고 하여 판정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직산현 동변면 판정리와 산직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충청남도 천안군 성산면 판정리가 되었다. 1917년 10월 1일 성산면이 직산면으로 이름을 바꿈에 따라 천안군 직산면 판정리가 되었고,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되면서 천원군 직산면 판정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천안군 직산면 판정리가 되었고,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의해 천안시 직산면 판정리가 되었다. 2002년 1월 1일 직산면이 직산읍으로 승격하면서 천안시 직산읍 판정리가 되었으며, 2008년 6월 23일 행정구가 설치되면서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판정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원통이골에서 남쪽으로 뻗은 지맥이 평야와 하천이 만나는 뾰족한 곶(串) 지역에 판정리가 있다. 판정리 앞에는 성거읍 삼곡리 도토성이 마주보고 있다.
원통이골의 등대의 집, 사조 산업 옆 방죽인 남북 68.8m[226척], 동서 77.8m[257척]인 극자논삼제(剋字論三題)와 한진 레미콘 뒤편 동북쪽 남북 97m[320척], 동서 75.8m[250척]의 덕자지이제(德字之已堤) 동쪽으로 한천(漢川)이 흐른다.
일제 강점기 당시 직산 금광에서 사금을 대량 채취할 때 순복골에 제련장이 있었으며, 경부 고속 도로 굴다리 옆 동네 전기통 거리에는 변전소가 설치되었다.
[현황]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2.8㎢이며, 총 228세대에 492명[남자 275명, 여자 2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판정 1리[느르머리, 전기통 거리]와 판정 2리[산직촌]로 이루어졌다.
동쪽은 입방면 용정리·성거읍 삼곡리, 서쪽은 직산읍 군동리·성환읍 학정리, 남쪽은 군동리·남산리, 북쪽은 입장면 흑암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거봉 포도를 많이 재배하며 벼농사도 많이 한다. 일부 자두가 생산된다. 경부 고속 도로, 국도 34호선[성환~진천]이 지나고 있으며, 국도 34호선과 경부 고속 도로를 연결하는 북 천안 인터체인지 교차로가 건설되어 사통팔달 교통의 길목이다. 인근 경부 고속 도로 북 천안 인터체인지 덕분에 크고 작은 공장과 물류 창고들이 많이 들어와 공업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온조 묘 터가 남아 있으며, 온조왕 제향(祭享)은 매년 양력 9월 18일에 지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1429년(세종 11)에 직산현 관아 동북 3리에 온조 묘를 세워 봄가을 향축을 내려 제사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으며, 1603년 충청 감사 유근이 온조왕의 사당을 다시 짓도록 상소했다는 기록도 있다.
장애인 복지 시설인 등대의 집이 있으며 해마다 자선 사업으로 연꽃 축제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