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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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道揆 |
영어공식명칭 | Nam Dokyu |
이칭/별칭 | 삼족(三足),여일(汝一),상일(尙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이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근하 |
출생 시기/일시 | 1662년 - 남도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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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99년 - 남도규 진사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710년 - 남도규 사헌부 지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11년 - 남도규 세자시강원 사서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17년 - 남도규 승정원 승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18년 - 남도규 사간원 대사간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21년 - 남도규 충청도관찰사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724년 - 남도규 사망 |
부임|활동지 | 충청도 - 충청도 |
묘소|단소 | 남도규 묘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이천리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의령 |
대표 관직 | 사간원 대사간 |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남도규(南道揆)[1662~1724]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자는 상일(尙一), 호는 삼족(三足)·여일(汝一)이다. 할아버지는 예조 참판,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등을 역임한 남노성(南老星)이고,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돈령부 도정(都正), 강릉진관병마동첨절제사(江陵鎭管兵馬同僉節制使) 등을 역임한 남택하(南宅夏)이다. 동생은 남도진(南道振)이다. 어머니는 해주 오씨(海州 吳氏)로, 공조 판서와 형조 판서 등을 역임한 오두인(吳斗寅)의 딸이다. 부인은 이중번(李重蕃)의 딸이다.
[활동 사항]
남도규는 1699년(숙종 25) 진사시에 합격하여 호조 좌랑과 의금부 도사를 지냈다. 1710년(숙종 36)에는 증광 문과에 을과 5등으로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持平)을 제수받았다. 사헌부 지평으로서 보방(保放)[보증인을 세우고 잠시 옥에서 풀어주는 행위]을 이용해 죄를 제대로 받지 않는 행태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였다.
1711년(숙종37)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사서(司書)로 임명되었고, 이후 문학, 정언, 장령, 헌납, 사간, 집의 등 다양한 관직을 거쳤다. 주로 삼사(三司)[조선시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합쳐 부르는 말]에서 직임을 수행하였고, 여러 옥사(獄事)에서 죄인의 처벌이 가벼운 경우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였다.
1713년(숙종 39)에는 홍문록(弘文錄)[조선시대 홍문관 관원을 선정할 때 작성하는 인선 기록]에 이름을 올렸고, 1716년(숙종 42)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1717년(숙종 43)에 승정원 승지로 임명되었고, 1718년(숙종 44)에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가 다시 승지를 역임하였다. 경종이 즉위한 뒤인 1721년(경종 1)에 충청도관찰사로 임명되었고, 이후 다시 대사간과 승지 등을 지냈다. 1724년(경종 4)에 사망하였다.
[묘소]
남도규의 묘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이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