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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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水地理 |
영어음역 | Pungsujiri |
영어의미역 | Pungsu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집필자 | 이철우 |
[정의]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개설]
풍수지리는 땅의 형세를 인간의 길흉화복에 관련시킨 전통적인 지리 이론으로서 주로 산천이 어우러져 이루는 외적인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산·수(水)·방위·사람 등 4가지 요소를 조합하여 구성하며, 『주역(周易)』을 주요한 준거로 삼아 음양오행의 논리로 체계화하였다. 이를 약칭 풍수설·지리설 등이라고도 한다.
도성·사찰·주거·분묘 등을 축조하는데 있어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을 가져오는 지상(地相)을 판단하려는 이론으로, 이것을 감여(堪輿)[하늘과 땅], 또는 지리(地理)라고도 한다. 또 이것을 연구하는 사람을 풍수가 또는 풍수선생·감여가(堪輿家)·지리가·음양가 등으로 부른다.
그들은 방위를 청룡[동]·주작[남]·백호[서]·현무[북] 등의 4가지로 나누었다. 모든 산천·당우(堂宇)는 이들 4개의 동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어느 것을 주로 하는가는 그 장소나 풍수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땅 속에 흐르고 있는 정기가 물에 의하여 방해되거나 바람에 의하여 흩어지지 않는 장소를 산천의 형세에 따라 선택하여 주택을 짓거나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은 그 정기를 받아 부귀복수(富貴福壽)를 누리게 된다고 믿었다.
풍수지리는 기본적으로 지기로서 이루어진 살아 있는 땅에 인간이 어떻게 잘 조화해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땅은 좋고 나쁜 것이 없고 스스로 그러한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 인간이 조화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이 조화하기 어려운 땅이 인간의 눈에는 좋지 못한 땅으로 보일 뿐이다. 자연 그 자체로서는 선악의 판단에 구애되지 않는 것이다. 땅과 조화할 수 있는 기반은 인간이 땅의 기를 느껴서 자신과 잘 맞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문명을 만듦으로써 점차 자연과 멀어졌고, 이에 따라 인간의 본능적인 능력으로서의 기감(氣感) 능력은 상실되었다. 기감이 상실된다면 풍수지리의 이론 체계는 쓸모가 없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론이 만들어졌다. 직접 땅의 기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땅의 여러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지기를 파악하려는 모든 노력이 풍수지리의 이론을 형성하고 있다.
[김천의 지명 풍수]
1. 삼산이수(三山二水)
금릉은 김천의 별호인데, 예로부터 삼산이수의 고장이라고 했다. 1949년 김천군의 김천읍이 시로 승격되고 나머지 지역인 김천군은 별호를 따서 금릉군으로 개칭되었다. 금릉이란 말은 서기 314년 중국 동진(東晋)이란 나라가 서고 건업(建業)에 도읍하여 수도를 금릉이라 한 데서 유래된다. 그 뒤 여러 번 나라가 바뀌면서도 이곳에 도읍했기 때문에 고도(古都)로서 유적이 많고 경관이 아름다워 역대 시인들이 즐겨 시제에 올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태백(李太白)의 「금릉 봉황대에 올라[登金陵鳳凰臺]」라는 것인데, 이태백은 최호(崔顥)의 「황학루에 올라[登黃鶴樓]」라는 시에 감복되어 이와 겨루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태백의 시 가운데 ‘금릉(金陵)’이니 ‘삼산이수(三山二水)’니 ‘봉황대(鳳凰臺)’니 ‘황학산(黃鶴山)[黃岳山이라고도 함]’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김천 지방의 여러 이름들도 모두 거기에서 따온 것이다.
‘삼산(三山)’은 중국 금릉에 있는 산으로 세 봉우리가 있어 이름하고, ‘이수(二水)’는 백로주 섬을 사이에 두고 두 줄기로 갈라진 진천(秦川)과 회천(淮川)을 말한다. 이 시에서 ‘삼산이수’를 따서 이곳 금릉에서는 자산, 황산(凰山), 응봉산(鷹峰山)을 ‘삼산’이라 하고, 직지천과 감천을 ‘이수’라 하였다. 삼산은 본래 자고새[鳳], 봉황새 암컷[凰], 매[臺]와 연관된 이름이다. 지금은 자산을 ‘尺山[척산]’, ‘紫山[자산]’으로 표기하는데 이는 성내동에 있다. 황산은 ‘黃山[황산]’으로 표기하는데 이는 지좌동에 있다. 응봉산은 ‘매봉산’이라 이르는데 이는 신음동에 있다.
이러한 삼산의 비정(比定)은 조선 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현대의 김천을 상징하기에는 적절치 못하였다. 1975년 김천 시민탑을 건립하면서 자연의 경관이 침식되지 않은 황악산(黃岳山), 고성산(高城山), 금오산[金烏山] 등으로 범위를 넓혀 김천의 자연 환경을 상징하는 삼산으로 삼기로 김천문화원에서 결정하였다. 그러나 금릉문화원에서는 1994년 3월 16일 정기 총회에서 황악산, 금오산, 대덕산 등을 삼산으로 결정하였으며, 시군 통합 후에는 이를 김천시 의회에서 양해하는 형식으로 굳어졌다.
2. 계림사
개령면 동부리의 아도화상이 직지사와 함께 창건한 계림사는 호랑이 풍수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계림사가 자리한 호두산(虎頭山)은 호랑이가 고개를 들고 있는 형국이다. 예전 호두산의 살기가 강해 감천 너머 맞은편 아포의 함골에서 연이어 사람이 죽어 나갔다. 선산 도리사에서 직지사를 짓기 위해 수시로 선산과 김천을 오가던 아도화상이 호두산의 살기를 누르기 위해 절 이름을 호랑이와 상극인 닭이 숲을 이루어 산다는 뜻의 ‘계림’으로 하고, 맞은 편 함골 뒷산을 개를 달아 놓았다는 뜻의 구현산으로 했더니 살상이 그쳤다는 것이다.
3. 과하주천(過夏酒泉)
김천시 남산동에 ‘과하주샘’이란 샘이 있었는데, 그 뒤편 암석에는 ‘금릉주천(金陵酒泉)’이라 새겨져 있다.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그 술맛과 향기가 몹시 좋아 여산주(礪山酒)[익산], 호산춘(湖山春)[문경]과 더불어 김천의 과하주는 국내 3대 명주의 하나로 이름이 높았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술 빚는 방법을 배워 가서 아무리 똑같이 빚어도 과하주와 같은 술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물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과하주샘을 주천이라고 했다.
한편 아주 옛날에 이곳에 금이 나는 샘이 있어 금지천(金之泉)이라 했는데, 김천(金泉)이란 지명도 이에 연유했다고 한다. 금지천에서 나는 금을 해마다 나라에 공물로 바쳤는데, 해가 갈수록 공물의 양이 늘어나 주민들의 노역이 과중해져 견딜 수 없게 되자 주민들이 그 샘을 메워 없앴다고 한다. 지금의 과하주샘은 금이 나던 샘과는 다르다고 하는데, 그 위치는 알지 못한다.
4. 여산(余山) 아산(牙山) 김산(金山)
“여산이 망하고 아산이 되고, 아산이 망하고 김산이 되었다.”고 구전되고 있다. 여산은 지금의 감문면 문무리인데 윗마을은 상여(上余), 아랫마을은 하여(下余)이고 합쳐서 여산이다. 구전으로는 이곳은 옛날 문무국(文武國)의 도읍지라 한다. 아산은 지금의 아천(牙川)으로 어모면 중왕리인데, 옛날 어모국(禦侮國)의 도읍지라 한다. 요컨대 문무국이 망하고 어모국이 서고, 어모국이 망하고 김산이 섰다는 것이다.
[김천의 지형 풍수]
1. 소쿠리형
김천은 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고 감천이 흐르는 동북만이 열린 소쿠리형이다. 소쿠리 안이 물건으로 차면 반드시 비워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재산을 모은 부자는 대를 잇지 못하고 당대에 타처로 떠난다고 한다.
김천 북쪽에는 사모 형상의 모습을 지닌 사모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구부러진 할미바위가 있다. 사모바위는 신랑이고 할미바위는 신부인데, 이 남녀의 혼례에는 하로(賀老)[양천동]가 상방(上房)이 되고, 지좌동의 황산은 신방의 병풍이 된다. 두 바위 중간에 가마바위[고성산에 있는데 그 위치를 알 수 없음]가 있고, 비녀바위[고성산에 있는 촛대바위]가 있다. 이처럼 김천은 풍수지리적으로 혼인형(婚姻形)이기 때문에 남녀 간의 애정 문제가 잦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모바위 이야기」는 모암산 서쪽 끝 사모형상 바위의 정기로 인해 김천에 고관이 많이 배출됐다. 그러나 수시로 고향을 찾는 고관들의 수발에 힘이 든 김천역의 역리가 바위를 깨뜨렸고, 이후 과거 급제가 끊겼다. 이에 양천동 하로마을에서 바위를 마을 입구로 옮겨 모신 뒤 옛 영화를 기원하자 다시 인재가 났다는 전설이다. 또 「할미바위 이야기」는 사모바위와 할미바위는 신랑·신부로 감천 너머 황산을 병풍 삼아 식을 올리는데 축하객이 넘쳐 났고, 식장 인근의 시장이 번성하는 등 김천에 큰 영화가 이어졌다는 전설이다. 김천은 최근 사모바위와 할미바위의 결혼식을 올려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