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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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福田里 |
영어음역 | Bokj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복산(福山)의 ‘복(福)’자와 마전(馬田)의 ‘전(田)’자를 따서 복전(福田)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충청북도 황간군 황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마전·하마전·복산이 통합되어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 복전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봉산면 복전동이 되었다. 1971년 복전1동·복전2동으로 분동되었다. 1973년 금릉군 대항면 복전동이 되었고,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복전리가 되었으며, 1995년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황악산에서 발원한 직지천이 마을을 중앙을 관류하고 직지천 변으로는 평야가 발달하였다.
[현황]
복전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3.9㎢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61세대에 623명(남자 304명, 여자 31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복전1리·복전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전의 이씨·충주 박씨·경주 이씨가 대대로 세거해 오고 있다. 1905년 마을 앞으로 경부선철도가 건설되면서 이웃 마을인 향천리와는 굴다리로 연결되었다. 예부터 직지사로 진입하는 초입에 해당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번성하였다. 직지천 변으로 평야가 발달해 예전에는 벼농사를 많이 지었고 최근에는 포도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문화 유적으로 충주 박씨 문중에서 자제 교육을 위해 세운 조천서당(藻川書堂)이 있다.
자연 마을로는 마전·복산·복전 등이 있다. 복전은 파평 윤씨 집성촌인 복산과 함께 지금은 폐동된 말개미[일명 마암]·넘바우·안정골까지 아우르는 큰 마을로, 봉산면 태화리 봉명[일명 가매기]과 함께 대표적인 충주 박씨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전후인 1590년대 학촌(鶴村) 박이룡(朴以龍)[?~1593] 장군의 세 아들 박사친(朴事親), 박사군(朴事君), 박사형(朴事兄)이 김천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던 부친을 따라 정착하여 일가를 이룬 이래 셋째 아들 박사형의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박이룡은 조선 중종 때 황간에서 박성건(朴成楗)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해서순찰사(海西巡察使)로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간으로 돌아와 의병을 모아 김천 지역 하로, 부상, 개령, 지례, 방아재, 우두령 등에서 왜병과 싸워 승리한 의병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현재 대항면 덕전리 세송과 직지사역 인근에박이룡 신도비와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박이룡 신도비는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손자이자 당대 명문장가인 영의정 정호(鄭澔)[1648~1736]가 지어 더욱 유명해졌다. 마전은 말과 낙타를 뜻하는 마락(馬駱) 또는 마라치라고도 한다. 마을 앞 아랫양지산의 형세가 말안장과 낙타의 등을 닮아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