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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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等里 |
영어음역 | Sadeu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사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앞으로 부항천이 굽이쳐 흐르면서 형성된 모래밭을 모래들·사들·사드래·사등(沙等)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상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웃갯절·아랫갯절·사드래·장자동(長子洞)·한적동(閑寂洞)이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사등리로 개편되었다. 1963년 사등1리·사등2리로 나누어졌고, 1949년 금릉군 부항면 사등리로 개칭되었다. 1995년 김천시 부항면 사등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을 앞으로 구남천과 부항천이 흐르고 부항천을 사이에 두고 문필봉(文筆峰)과 마주하고 있다. 마을 뒤에는 활인산(活人山)이 솟아 있다.
[현황]
사등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5.39㎢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10세대에 189명(남자 93명, 여자 9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지좌리, 남쪽으로 대덕면 조룡리, 북쪽으로 두산리와 이웃하고 있다. 사등1리·사등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벽진 이씨 전서공(典書公) 이존인(李存仁)이 정착한 이래 연안 이씨·벽진 이씨가 세거해 오고 있다. 협곡에 자리 잡아 농경지가 적고 담배와 양파를 주로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 벽진 이씨 사당인 모원당(慕遠堂), 부항면장 현창석 신도비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웃갯절·아랫갯절·사드래·장자동·한적동이 있다. 갯절은 옛날 개사(介寺)라는 절이 마을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개사를 기준으로 아랫마을을 아랫개절, 윗마을을 윗개절이라 하였다. 개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산 너머 대덕면 조룡리로 이전해 봉곡사(鳳谷寺)가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개사에 머물 때 까마귀들이 계속 나무를 물고 날아가기에 따라가 보니 지금의 봉곡사 터에 집을 짓고 있어 개사를 폐하고 봉곡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개사에서 날아간 연이 떨어진 자리에 지은 절이 봉곡사라고도 한다.
갯절은 달리 단산(丹山)이라고도 한다. 마을 일대 지형이 풍수지리상 봉황새가 앉아있는 봉좌단산혈(鳳坐丹山穴)에 해당하는 명당이어서 1897년(고종 34) 마을 주민들의 청원으로 단산으로 바꾸었다. 봉곡사, 비봉산(飛鳳山) 등 주변에 유달리 봉황(鳳凰)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은 봉좌단산혈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구남천(九男川)은 옛날 한 선비가 세상을 등지고 계곡 깊숙이 들어가 살면서 아들만 아홉을 두었는데 훗날 아들들이 하나같이 장성하여 가문을 빛내어 붙인 이름이다. 조선 건국에 반대해 벼슬을 버리고 단산으로 낙향해 많은 후학을 양성한 이존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드래는 월곡리[부항면]를 거쳐 흘러온 부항천이 마을 앞에서 반달 모양으로 흐른다 하여 사월(沙月)이라 한 것이 변음되어 굳어진 이름이다. 1468년 문과에 급제한 뒤 현감과 성균관직강을 지낸 이숙황(李淑璜)이 말년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면서 연안 이씨 현감공파와 감찰공파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에 연안 이씨 문중 서당인 월파재(月波齋)가 있다.
사드래 입구의 부항지서 안쪽에는 6·25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망루대가 잡풀 속에 홀로 서 있다. 1950년 9월부터 1951년 12월까지 삼도봉과 덕유산 등지에 은거하던 북한군 패잔병들이 군사 요충지인 부항면 일대를 차지하기 위해 수시로 부항지서를 공격하면서 지역 청년 단원들과 교전을 벌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마을 앞 부항천에는 배정소(裵鄭沼)라 불리는 큰 웅덩이가 있다. 옛날 배씨와 정씨 성을 가진 선비들이 이곳 바위에 올라앉아 노닐던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장자동은 옛날 연안 이씨 문중의 장남이 분가하여 큰 재산을 모으고 주위에 덕을 베풀고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한적동은 장자동 맞은편 떡시루처럼 생긴 시루봉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마을 앞은 부항천, 뒤로는 시루봉이 가로막고 있어 사람의 왕래가 없이 한적하고 조용하여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