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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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由恭 |
영어음역 | Jeong Yugong |
이칭/별칭 | 만은(晩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호동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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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선비 |
성별 | 남 |
본관 | 해주(海州) |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선비.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만은(晩隱). 증조할아버지는 고려대장군 정초(鄭初·鄭礎)이다. 『해주정씨족보』의 별보는 정초로부터 11세손까지를 수록한 것이다. 이 계열은 흔히 해주 정씨 영남파로 불리는 가계로 정초의 증손 정유공(鄭由恭)의 세 아들 정철견(鄭鐵堅)[붕(鵬) 계열], 정은견(鄭銀堅)[난(鸞) 계열] 정석견(鄭錫堅)[부(鳧) 계열]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정철견의 아들 신당(新堂) 정붕(鄭鵬)은 조선 중기 유학사에서 비중을 지닌 명현(名賢)이다.
[활동 사항]
정유공(鄭由恭)은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세조 대에 현감이 되었으나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사리에 엄정하고 경학에 밝아 영남 신진 사류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매계 조위(曺偉)는 정유공에 대해 “개령현에 학문하는 이가 적더니, 정공이 옮긴 뒤로 향풍이 쇄신되고 학문하는 이가 부쩍 늘었다.”라고 하였다. 정유공의 세 아들이 김굉필(金宏弼)·김종직(金宗直)·조위 등과 도의로 사귀게 되면서 정유공의 집은 일대 강학소의 기능과 향풍 쇄신의 진원지가 되었다. 김종직이 “학문과 도의를 논할 사람을 한 집안에서 만났도다.”라고 한 것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