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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499
한자 寺址
영어의미역 Temple Sit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집필자 조원창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남아 있는 절 터.

[개설]

사지(寺址)는 과거 완전한 형체를 갖춘 사찰이었으나 기둥을 포함한 사찰의 상부구조가 멸실되고 기단, 초석, 적심시설 등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사찰의 터를 말한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사지(寺址)가 남아 있다.

[백제시대]

백제시대 공주에는 흥륜사, 대통사, 수원사, 옹산사 등이 창건되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흥륜사는 성왕 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그 위치가 확실하지 않으며 수원사와 옹산사는 위치뿐만 아니라 세워진 연대도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대통사만이 개략적인 창건 시기가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개략적인 위치는 어느 정도 추정되고 있다.

『삼국유사』의 내용 중 「대통원년정미위양제창사어웅천주(大通元年丁未爲梁帝創寺於熊川州) 명대통사(名大通寺)」라는 기록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대통사는 527년(성왕 5)에 양 무제를 위하여 웅천주(공주)에 창건된 사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통사의 정확한 위치는 전해지지 않으며 다만 당간지주(보물 제150호)를 비롯한 중동·반죽동 석조, ‘대통’명 인각와 등이 확인되었던 공주시 반죽동·중동 주변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당간지주가 통일신라시대 것이고 와당이 고려시대 것으로 확인된 것으로 보아 대통사가 백제시대 이후로 통일신라시대 또는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왔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

공주 지역의 사지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방위에 따른 혈사의 존재이다. 혈사는 동굴을 부속시설로 가지고 있는 사원으로 공주 지역의 혈사들은 주로 백제시대의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 대한 정밀 발굴 조사 결과 모두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혈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공주 지역소재 대표적인 통일신라시대 혈사로는 공주 서혈사지, 공주 남혈사지, 공주 주미사지 등을 들 수 있다.

1. 공주 서혈사지

공주 서혈사지는 공주시 웅진동 쉬엇골에 있는 큰 석굴 남쪽에서 확인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서혈사가 망월산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27년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상 3구가 반출되기도 하였다. 1929년에는 학술적인 조사가 실시되는 과정에서 ‘서혈사’, ‘삼보’등의 명문와편도 출토되었다. 이후 1969년과 1970년 두해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동서 길이 10m, 남북 길이 8m의 금당지와 탑지가 확인되었다.

동굴은 자연동굴로서 바닥면의 최고 길이가 16.8m, 최대 너비는 7.5m였다. 동굴 내 벽면에 접해 8각형의 얕은 좌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불상을 안치하고 예배를 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인 여러 명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승려나 신도들의 수행처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2. 공주 남혈사지

공주 남혈사지는 공주시 남동쪽에 있는 금학동 남산 북서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사지는 철책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사역은 크게 3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는 1단인 하단과 2단인 상단까지만 이루어졌으며 하단의 동쪽으로는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길이 26m의 석굴이 위치하고 있다. 석굴 내에서는 8각의 단 시설과 함께 석불의 동체 2편이 수습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는 불상도 안치되어 있다.

건물지는 7동이 조사되었으나 모두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중 제3건물지 및 제4건물지 내에서 확인된 기단 시설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건물지 내에서 수습된 주름무늬병이나 수막새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지 내에서는 순청자, 해무리굽 청자, 상감청자 등도 다수 확인되어 그 법맥이 고려시대까지에도 계속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4건물지에서는 풍화 상태가 심한 화강암제의 복발 하나가 수습되었으며 사역의 북서쪽에서는 탑지가 확인되었다. 기단부 및 탑신부가 모두 유실된 채 화강암제 지대석만 별석으로 조사되었다.

3. 공주 주미사지

공주 주미사지공주시 주미동 주미산의 서향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충청남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및 조선시대까지의 유구가 분포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유구는 사역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2동의 건물지와 석등대좌, 미완성의 석탑지 등이 확인되었다. 북쪽에 위치한 제1건물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에 해당되는 치미, 수막새, 암막새, 서까래기와 등이 수습되어 금당지로 추정되었다.

석등 대좌는 자연 화강암 위에 8각형으로 조출되어 있으며 대석에는 안상과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석탑은 미완성으로 큰 화강암석 위에 방형 대좌가 조출되어 있고 주변에서 우주가 모각된 여러 개의 면석과 옥개석 받침 등이 수습되었다. 이로 보아 해당 장소에서 석탑에 필요한 부재를 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

공주 지역 소재 대표적인 고려시대 혈사로는 공주 구룡사지동혈사지가 있다.

1. 공주 구룡사지

공주 구룡사지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지 내에서의 출토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법맥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지는 당간지주에서 서쪽으로 약 15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금당지로 추정되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형 건물지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금당지 정면 좌우에서도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사역 동쪽에서도 정면 8칸 측면 2칸의 요사 건물 등이 검출되었다. 그러나 탑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체적인 전각 배치로 보아 탑이 없는 별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금당지로 추정된 제1건물지는 사역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일부가 남아 있으나 가구 기단으로 추정되며 면석 사이에서는 탱주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기단은 남북 길이 17.5m, 동서 너비 19.3m로 전체 면적 338㎡이다. 불상은 초석 배치로 보아 건물 중앙 후면에 안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면 기단과 외진 초석(적심) 사이에는 방형 및 장방형의 무문전이 한 겹으로 시설되어 있다. 공주 구룡사지에서는 ‘수석사(水石寺)’명 명문와를 비롯해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의 와당, 치미, 청자, 분청사기, 백자, 토기 등도 수습되었다.

2. 동혈사지

동혈사지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천태산 중턱 계곡부에 위치하고 있다. 천태산동혈산으로도 불리며 동혈사(銅穴寺)동혈사(東穴寺)로도 표기되고 있다. 사역은 계곡을 중심으로 아래에서 위로 분포하고 있으나 발굴 조사는 상단부에 한해 부분적으로 실시되었다.

고려시대 가람은 대체로 계곡의 중하단부에, 그리고 조선시대의 가람은 계곡의 상단부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혈(穴)은 현 동혈사 금당 동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암산의 중간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근까지도 수행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닥에는 온돌이 시설되어 있으며 온돌 상부를 덮은 바닥에서는 조선시대의 기와편이 소량 수습되었다.

[조선시대]

공주 지역 소재 대표적인 조선시대 혈사로는 금성동 정지사지가 있다. 금성동 정지사지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정지산의 백제 유적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그 동안 백제사지로 알려져 왔으나 발굴 조사 결과 고려시대 이후의 사지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역이 좁고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조선시대에 해당되는 기와, 자기, 토기 등이 수습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반출된 소탑 1기가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이관·전시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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