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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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瑞生 |
영어음역 | Bak Seosaeng |
이칭/별칭 | 영가,율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영가(寧可). 호는 율정(栗亭).
[활동사항]
박서생(朴瑞生)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음보(蔭補)로 성균학정이 되었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 3등으로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서 을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조참판과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에서 물러나 귀향하자 왕이 높은 지조와 청렴결백함을 기리어 청백리에 책록하였다.
세종 대에 통신사로 일본에 두 번이나 다녀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수차(水車)와 물레방아를 만들어 농사 기술의 혁신을 가져왔으며, 탄광을 개발하고 무역을 진흥시켜 실학 운동의 선구자로 공헌하였다. 또한 공자묘를 창건하여 향리의 선비들이 학문에 힘쓰게 하였고, 귀향 후에는 스승 길재의 행장을 정리하여 길재의 도학을 세상에 알렸다.
[상훈과 추모]
정하묵(鄭夏默)이 지은 사적비가 금오산에 있고, 유석우가 지은 기적비(紀蹟碑)가 금오산 채미정(採薇亭) 아래에 있다. 의성(義城)의 구천서원(龜川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