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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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鄧林 |
영어음역 | Yi Deunglim |
이칭/별칭 | 대재(大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대재(大才). 이유강(李惟康)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인손(李麟孫), 아버지는 이운(李運), 장인은 성윤(成允)과 최호(崔湖)이다. 아들로 이언영(李彦英)이 있다.
[활동사항]
이등림은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3년(선조 6) 식년 문과에서 병과 16위로 급제하였다. 1584년에 인동현감(仁同縣監)으로 부임하여 많은 선정을 베풀고 같은 해 12월 이임했다. 뒤에 벼슬이 공조좌랑에 이르렀다.
[학문과 사상]
이등림은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교류하였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괘혜암(掛鞋巖)이 있는데, 괘혜암은 짚신을 걸어 두었던 바위라는 뜻이다. 짚신 한 짝도 관아의 것이므로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이등림의 청백함을 기리기 위해 고을 사람들이 명칭을 새겨 두었으며 350여 년이 지난 뒤에 옥산인(玉山人, 옥산은 인동의 별칭) 장윤상(張允相)이 글을 짓고 평산인(平山人) 신상태(申相泰)가 글씨를 써서 그의 행적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