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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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過金烏山-李荇- |
영어의미역 | Passing the Geumosan Mounta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영호 |
성격 | 한시|고시|오언 고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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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행(李荇, 1478~1534) |
창작연도/발표연도 | 1510년(중종 5)/1634년(인조 12) |
[정의]
1510년(중종 5) 이행이 구미 지역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개설]
이행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다.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水)·청학도인(靑鶴道人)이다.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으나, 기묘사화 후 입조(入朝)하여 대제학,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지냈다. 1634년 간행된 이행의 문집 『용재집(容齋集)』 중 권7에 1510년 이행이 서울을 떠나 남쪽의 금오산(金烏山)·가야산(伽倻山)·해인사(海印寺)·홍류동(紅流洞) 등지를 유람할 때 시 형식으로 지은 「남유록(南遊錄)」이 수록되어 있다.
「과금오산」은 「남유록(南遊錄)」에 속한 작품 중 하나로 유람기 성격의 오언 고체시이다. 오언 절구는 다섯 글자가 하나의 절을 이루는 형식으로, 오언 율시 또는 오언 한시라 부른다. 오언 고체시는 오언 절구에 따르되 규칙이 까다롭지 않다.
[구성]
「과금오산」의 전반부 8구는 야은 길재의 의(義)와 문향의 품격을 소보와 백이의 고사를 비유로 들어 노래하였고, 후반부 8구는 세월이 변해 성대의 치세에도 불구하고 유도(儒道)가 행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야은 길재와 같은 선비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내용]
소보(巢父)가 귀를 씻고 은거하니 요 임금의 덕이 하늘과 같이 크네/ 무왕은 한번 군복을 입고서 천하를 평정해도 백이는 채미가를 노래하였네/ 선비란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하거늘 옛날엔 들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드물구나/ 우뚝하도다, 야은의 문하여! 밝고 환하게 여전히 의리가 남아 있구나/ 능곡은 세월 따라 변천하고 밝은 해는 중천에 떠올랐으니/ 옷을 떨쳐내고 돌아오길 상서해도 운산이 별 시비가 없구나/ 이런 사람을 볼 수 없으니 우리의 도를 어느 누가 바랄까?/ 숭악을 지나며 만세 삼창 들으니 문득 혼령이 돌아온 듯하구나(巢父洗耳臥 堯德如天大 武王一戎衣 伯夷歌采薇 士固有如此 昔聞今世稀 卓哉吉門下 皎皎尙餘輝 陵谷一遷變 白日中天飛 上書拂衣還 雲山無是非 斯人不可見 斯道孰庶幾 三叫過嵩岳 儻有魂來歸)
[특징]
「과금오산」은 오언 고체시로 운자에 특별히 제한을 받지 않지만 2구, 4구에서는 거의 압운하였다. 보통 한 편에 한 운자를 쓰거나 중간에 운을 바꾸기도 하지만 「과금오산」은 한 운자로 압운하였다.
[의의와 평가]
「과금오산」은 구체적으로 소보와 백이·숙제의 고사를 비유로 들어 상대적으로 야은 길재에 대한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