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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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遊金烏山記-宋秉璿- |
영어의미역 | Travel Writing of Geumosan Mounta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영주 |
성격 | 기행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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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송병선(宋秉璿, 1836~1905) |
창작연도/발표연도 | 1866년(고종 3) |
[정의]
1866년(고종 3) 송병선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비롯해 천마산·추풍령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
[개설]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조선 고종(高宗, 1852~1919) 때의 문신으로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이다. 벼슬이 좨주를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경계할 것을 상소하고 고향에 가서 자살하였다. 「유금오산기」(송병선)는 송병선이 1866년 8월 25일부터 9월 12일까지 동생 송동옥(宋東玉) 및 두세 명의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천마산(天摩山)·추풍령(秋風嶺)·금오산(金烏山)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다.
[내용]
주자(朱子)의 「원유편(遠遊篇)」을 독서하던 송병선이 동생 송동옥과 몇몇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교남(嶠南)의 산수를 유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함께 합류하였다. 외제(外弟) 김성례(金聖禮)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8월 25일 유람을 출발한 이들은 천마산 인근의 한천서원(寒泉書院)·명숙당(明淑堂)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 금산(金山)·김천(金泉)·선산(善山)을 지나 금오산에 당도하였다.
금오산에서 가장 높은 후망대(侯望臺)에 올랐다가 인동 경계의 오산에서 길재(吉再, 1353~1419)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를 읽고 평성을 지나 매강으로 향하였다. 이후 매학정(梅鶴亭)·직지사(直指寺) 등을 유람하고 오산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뒤 강화에 침입했던 양이들이 물러나 길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을 단풍 구경을 위해 무주를 지나 한풍루(寒風樓)·환수정(喚睡亭)을 거쳐 팔공산(八公山)의 안국사(安國寺)·사고(史庫)·호국사(護國寺) 등을 유람하였다.
[의의와 평가]
「유금오산기」(송병선)는 유람지 곳곳에서 마주한 길재와 같은 선현의 충절과 길재의 감화를 받은 약가부인(藥哥夫人)의 정렬(貞烈), 향랑(香娘)의 절의 및 「산유화곡」의 유래 등을 진솔하게 묘사하여 유학자의 기행기에서 보이는 도덕적, 교훈적 정형성을 탈피한 기행기의 한 형태를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