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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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榤尾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박상일 |
성격 | 성곽|산성|토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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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높이 | 60㎝ |
둘레 | 약 100m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구릉지 야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위치]
걸미산성(榤尾山城)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옹정마을 위에 있는 해발 약 80m의 낮은 구릉지 야산에 위치한다. 동쪽에 ‘덕문이들’로 속칭되는 넓은 들판을 끼고 있고, 북쪽으로는 백곡천(栢谷川)을 사이에 두고 진천 대모산성(大母山城)과 마주보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도당산성(都堂山城), 문안산성(文案山城), 소을산 봉수대 등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형태]
걸미산성은 남쪽의 저곡지대를 끼고 설축한 포곡식의 토축성이다. 전천읍 중심가에서 동남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걸미산에는 동단부에 속칭 ‘미륵댕이’라 불리는 산기슭에 용화사 미륵석불이 있고, 걸미산성의 남쪽 부분은 진천중학교 신축으로 유실되었다. 산성의 지세는 북쪽은 백곡천을 끼고 형성된 ‘덕문이들’ 평야를 향하여 급경사를 이루었고, 서쪽과 남쪽은 구릉지로 이루어졌다.
토축의 성지는 북쪽의 능선을 따라 약 100m 정도 남아 있는데, 현재 성벽이 낮아져 높이는 60㎝ 정도에 불과하고 폭은 상단부에서 약 120㎝이다. 북쪽의 성벽 아래에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어 성을 둘러싸고 해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이밖에 문지와 수구 등의 시설은 위치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북쪽 성벽의 동단부에서 남으로 꺾이는 회절부에 치성(雉城)의 흔적이 있으나 분명하지는 않다.
[현황]
걸미산성 내에서는 원삼국~삼국시대의 종집선문(縱集線文)이 타날(打捺)되고 횡침선(橫沈線)이 돌아간 회색·회청색의 연질·경질 토기편이 주로 발견되었다. 이 토기편들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걸미산성의 축조 시기는 삼국시대로 보이나 출토 유물은 토성과 무관한 유물들로 추측되며, 공동묘지로 이용되는 등 산성의 기능은 이미 오래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걸미산성은 아직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을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산성이라기보다는 생활 터전으로 적합한 위치에 구축된 것으로 보아 고지성 취락 유구로 판단된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진천의 역사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걸미산성에 대한 발굴조사 및 학술조사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